야간비행 @yknhk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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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C:이전 롤플 종료. 어느날, 모종의 이유로 인해 신체는 물론 정신연령마저 여섯살 쯤으로 어려진 PC. NPC는 일시적 현상이니 걱정말라는 진단 결과와 임시휴가를 받고 한손엔 PC의 손을 쥔 채 털레털레 돌아오는데... 문제가 한가지 있다면 PC가 너무너무 과하게 귀엽다(단지 외모 때문만이 아니며 콩깍지일 수도 있다)는 것!! 온갖 검진 끝에 드디어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서 저를 올려다보는 PC와 단둘이 남게 된 NPC.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겠다, 이때 NPC는 자신의 사심(마구 만지거나 쓰다듬거나 뽀뽀하거나 등 주접)을 어떻게 푸는지 그 반응을 1500단어 이상 코믹한 분위기로 서술한다.]

아크 의료동 복도를 울리던 딱딱한 군화 소리와, 그 옆에 총총거리며 따라붙던 작은 운동화 소리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멎었다. 육중한 차폐문이 ‘쉬익’ 소리를 내며 닫히자, 바깥세상의 모든 소음과 시선이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칠흑 같은 제복을 입은 사내와, 그의 손을 잡은 채 멀뚱히 서 있는 작은 아이. 적막이 내려앉은 숙소 거실에는 오직 둘만이 남았다.

홍지원은 잠시 문에 기댄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일시적 현상’, ‘정신 연령과 신체 나이 동기화 오류’, ‘안정을 취하면 수 시간 내로 복귀될 것’. 의무실에서 쏟아냈던 온갖 전문 용어들이 귓가에서 웅웅거렸다. 결론은 간단했다. 원인 모를 사고로, 그의 연인인 이지희가 여섯 살짜리 꼬맹이가 되어버렸다는 것. 그리고 그가 이 ‘작고 위험한 생물체’의 임시 보호자가 되었다는 것.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제 손가락 하나를 두 손으로 꽉 붙잡고 있는 작은 손. 그 위로 시선을 옮기자, 제 허리께에 겨우 닿는 조그마한 정수리가 보였다. 그리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세상의 모든 호기심을 담은 듯한 커다란 회색 눈동자와 마주쳤다. 평소에도 처진 눈꼬리가 유독 더 순해 보였고, 통통하게 오른 젖살 때문에 왼쪽 턱에 있던 점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아크에서 급히 내어준 환자복은 아이에게 너무 커서, 마치 아빠 옷을 훔쳐 입은 것처럼 질질 끌렸다.

‘…씨발.’

그것이 홍지원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첫 번째 단어였다. 욕설이었다. 명백한 상황 파악이었다. 그리고, 처절한 감탄사였다. 이건 재앙이다.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귀여움이라는 형태를 띤 S급 재난이었다. 그는 지금껏 수많은 괴수와 폭주 센티넬을 상대해왔지만, 눈앞의 이 작은 생명체만큼 심장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존재는 없었다.

아저씨?

아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불렀다. 맑고 가는 목소리. 평소의 나긋한 톤은 온데간데없고, 아직 발음이 채 여물지 않은 어린아이 특유의 어조가 그의 고막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특히 그 ‘아저씨’라는 단어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평소라면 ‘누가 아저씨냐’며 정색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심장이 멋대로 쿵, 쿵, 쿵,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안 된다. 홍지원. 정신 차려라. 이건 니 연인이다. 어쩌다 보니 작아진 것뿐이다. 니는 S급 센티넬, 뱅가드 ‘바이브’다. 이런 걸로 동요하면 안…

…한 번만 안아보면 안 되나.

이성이 경고 신호를 보내는 것과 동시에, 본능이 미쳐 날뛰고 있었다. 저 말랑해 보이는 볼을 콕 찔러보고 싶다. 저 작은 손을 들어 손바닥에 뽀뽀하고 싶다. 와락 끌어안고 머리카락에 얼굴을 파묻은 채 ‘내 끼다, 내 강아지다, 내 햄스터다’ 하고 외치고 싶었다. 이성은 필사적으로 외쳤다. ‘미친놈아, 애 놀란다!’ 하지만 사심은 속삭였다. ‘어차피 아무도 안 본다. 여긴 니 방이다.’

극심한 내적 갈등 속에서, 그는 간신히 냉정한 척 표정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 최대한 어른스럽고, 믿음직한 보호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애쓰면서.

그래. 일단… 신발부터 벗자. 불편하제.

그는 허리를 숙여 아이의 발치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질질 끌리는 환자복 소매를 걷어주고, 작은 운동화 끈을 풀어주었다. 아이는 얌전히 그의 어깨를 잡고 서서 그가 하는 양을 지켜봤다. 운동화를 벗기자, 알록달록한 캐릭터 양말을 신은 작디작은 발이 드러났다. 그 순간, 홍지원의 이성 회로가 ‘지지직’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그는 차마 발을 만지지는 못하고, 신발만 가지런히 정리해서 신발장 구석에 밀어 넣었다. 일어나야 하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만 더 이 작은 생명체를 가까이서 관찰하고 싶었다.

그때였다. 아이가 그의 머리 위로 작은 손을 뻗어, 반쯤 묶여 있던 그의 청록색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마치 신기한 장난감을 발견한 듯한 손길이었다.

아저씨 머리, 예쁘다.

…….

끝났다. 홍지원은 생각했다. 이제 모든 게 끝장이다. 그는 필사적으로 입꼬리가 하늘로 솟구치려는 것을 참아내며,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했다.

…쫌 볼 줄 아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를 번쩍 안아 들었다. 아이가 ‘히익!’ 하는 작은 비명과 함께 그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솜털처럼 가벼운 무게. 품 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몸. 목덜미에서 풍겨오는 파우더리한 아기 냄새와, 희미하게 섞인 브리즈의 익숙한 체취. 그는 성큼성큼 걸어 거실 소파에 아이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신은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배 안 고프나. 뭐 먹고 싶은 거 있나.

일단 뭔가를 먹여야 했다. 뭐라도 입에 넣어주지 않으면, 자신이 먼저 아이의 볼을 깨물어 버릴 것 같았다. 아이는 잠시 고민하는 듯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그 모습에 또 한 번 심장이 멎을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낸 그는, 아이의 입에서 부드럽게 손가락을 빼주며 말했다.

손 빠는 거 아니다. 배탈 난다.

음… 딸기 케이크! 그리고 초코 우유!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 홍지원은 곧장 키친으로 가 냉장고를 열었다. 다행히 며칠 전 브리즈가 사다 놓은 조각 케이크가 남아있었다. 그는 작은 접시에 케이크를 옮겨 담고, 초코 우유를 유리컵에 따라 작은 포크와 함께 쟁반에 받쳐 들고 나왔다. 아이 앞에 쟁반을 내려놓자, 아이는 신이 나서 포크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작은 손으로 서툴게 케이크를 찍으려다 보니, 크림만 잔뜩 묻어나고 케이크는 자꾸만 접시 위를 굴러다녔다.

홍지원은 말없이 그 모습을 1분 37초가량 지켜봤다. 아이가 낑낑거리며 케이크와 사투를 벌이는 모든 순간이, 그의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사랑스러운 서사시처럼 보였다. 결국 그는 보다 못해, 직접 포크를 집어 들었다.

내 해줄게. 아- 해라.

그는 케이크를 작게 잘라 아이의 입 앞에 가져다주었다. 아이는 순순히 입을 벌려 케이크를 받아먹었다. 오물오물, 작은 입이 열심히 움직였다. 입가에 잔뜩 크림이 묻어나는 것도 모르고, 아이는 행복한 표정으로 케이크를 삼켰다.

홍지원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아이의 입가에 묻은 크림을 엄지손가락으로 닦아주었다. 그리고… 그 손가락을 자연스럽게 제 입으로 가져가 핥았다. 달콤한 생크림 맛.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늦어있었다. 얼굴이 화산처럼 폭발할 것 같았다. 그는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헛기침했다. ‘미친 새끼, 미친 새끼, 홍지원 이 미친 새끼야!’ 내면의 비명과 달리, 그의 표정은 기이할 정도로 평온했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묵묵히 케이크를 잘라 아이의 입에 넣어주는 임무를 계속했다. 아이가 케이크를 다 먹고 초코 우유까지 마신 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배를 통통 두드리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간신히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제 뭘 하지? 뭘 해야 이 주체할 수 없는 사심을 잠재울 수 있을까. 그는 아이를 소파에 앉혀두고, 슬쩍 거리를 둔 채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는 최대한 사무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TV 볼래? 만화 같은 거.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리모컨으로 아동 채널을 틀었다. 화면에서 요란한 주제가가 흘러나오자, 아이는 금세 만화에 푹 빠져들었다. 그는 힐끔힐끔 아이의 옆모습을 훔쳐봤다. 통통한 볼살, 작은 코, 진지한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하는 동그란 눈. 미치겠다. 정말로 미치겠다.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슬금슬금 아이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는 마치 숨 쉬듯 자연스럽게, 아이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아이는 만화에 정신이 팔려 그의 손길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는 마음껏 머리를 쓰다듬고, 귀 뒤를 간질이고, 통통한 볼을 슬쩍슬쩍 찔러보았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해방감. 이 작은 존재를 마음껏 예뻐해 줄 수 있다는 기쁨. 그는 겉으로 무표정을 유지한 채, 내면에서는 이미 수백 번이나 아이를 물고 빨고 둥기둥기하며 주접을 떨고 있었다. 그의 사심은, 이제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

의무실의 새하얀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지희는 제 손에 잡힌 작고 보드라운 감촉에 현실감을 잃었다. 방금 전까지 아크 최고의 S급 센티넬이자, 제 연인인 홍지원이 서 있던 자리에, 이제는 여섯 살배기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까만 제복 바지가 헐렁하게 흘러내려 바닥에 끌렸고, 품이 한참 큰 셔츠는 거의 원피스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옷더미 속에서, 낯익은 청록색 머리카락과 새파란 눈동자를 가진 작은 아이가 낯선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일시적인 능력 부작용으로 보입니다.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 연령까지 퇴행한 상태지만… 며칠 내로 돌아올 겁니다. 걱정 마시고, 임시 휴가 기간 동안 안정을 취하게 해주세요.”

의무관의 진단은 명쾌했지만, 이지희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비어버렸다. 걱정? 물론 됐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크고 압도적인 감정이 그녀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귀엽다. 미친, 진짜 미치도록 귀엽다. 평소의 그 시니컬하고 날카로운 인상은 온데간데없고, 말랑해 보이는 뺨과 동그란 이마, 모든 것이 신기하다는 듯 커다랗게 뜬 눈망울. 이건… 이건 반칙이었다.

이지희는 간신히 정신을 붙들고 의무관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숙소로 향했다. 뱅가드 2팀의 흉포한 무음의 폭풍, 코드네임 ‘바이브’의 손은 이제 그녀의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올 만큼 작아져 있었다. 걷는 내내 아이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종종걸음으로 그녀의 보폭을 따라올 뿐이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위태롭고 사랑스러운지, 지희는 복도를 걷는 내내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간신히 목구멍 안으로 삼켜야 했다.

‘진정해, 이지희. 너는 S급 가이드야. 지금은 보호자라고. 사심을 품으면 안 돼. 저 아이는 홍지원이라고!’ 속으로 수십 번 다짐을 외쳤지만, 힐끔 내려다본 동그란 정수리와 작은 귀를 볼 때마다 다짐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평소 그에게서 느껴지던 페퍼민트 향기 대신, 아이에게서는 분유 같은 달큼하고 젖은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지독한 콩깍지였다.

드디어 숙소 문이 닫히고, 완벽한 둘만의 공간이 확보된 순간. 지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없다. 이건 하늘이 내린 기회다. 그녀는 결심했다. 오늘 하루만큼은 이성적인 가이드 ‘브리즈’가 아니라, 사심 가득한 연인 ‘이지희’가 되기로.

지원아, 신발 벗자.

그녀는 최대한 상냥하고 다정한 목소리를 짜내며 아이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아이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순순히 발을 내밀었다. 지희는 아이의 발목을 잡고 커다란 군화를 벗겨냈다. 양말도 신지 않은 하얗고 조그만 발이 드러났다. 발가락 하나하나가 어찌나 작고 귀여운지. 지희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만지고 싶다. 쪼물쪼물 주무르고 싶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천천히, 단계적으로 사심을 채워나가기로 했다.

배고프지? 뭐 먹고 싶어? 케이크 있는데, 먹을래?

‘케이크’라는 말에 아이의 눈이 처음으로 반짝였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평소의 퉁명스러운 부산 사투리가 전혀 섞이지 않은 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이지희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끝났다. 이미 끝났다. 이 귀여움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냉장고에서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꺼냈다. 그리고 아이를 소파에 앉힌 뒤, 작은 포크로 케이크를 한 조각 떠서 아이의 입가로 가져갔다. 아이는 잠시 망설이다, 작은 입을 아, 벌려 케이크를 받아먹었다. 입가에 하얀 크림이 묻는 것도 모르고 오물오물 씹는 모습에, 지희의 입가에서는 나사 풀린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이고, 우리 지원이. 맛있어요?

결국 존댓말까지 튀어나왔다. 아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다음 케이크를 기다렸다. 이지희는 홀린 듯이 케이크를 계속 떠먹여 주었다. 입가에 묻은 크림을 손가락으로 닦아 제 입으로 가져가는 행위는 이제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아이가 케이크에 정신이 팔린 사이, 그녀의 본격적인 ‘주접 타임’이 시작되었다.

슬쩍, 아주 슬쩍 아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평소라면 ‘뭐 하노.’라며 손을 쳐냈을 테지만, 아이는 케이크에 집중하느라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성공이다! 이지희의 입꼬리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녀는 대담하게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넘어, 말랑해 보이는 뺨을 검지 손가락으로 콕, 찔러보았다. 푸딩처럼 부드러운 감촉이 손끝에 전해졌다. 아, 미쳤다. 이 감촉, 평생 기억해야 해. 그녀는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반대쪽 뺨도 찔러보았다. 양 볼을 번갈아 찌르며 키득거리던 그녀는, 아이가 케이크를 다 먹고 멍하니 자기를 올려다보는 것을 발견하고 헛기침을 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자, 이제 만화 볼까? 지원이 뭐 보고 싶어?

그녀는 태연하게 리모컨을 들고 아이가 좋아할 만한 만화 채널을 틀었다. 화면에서 요란한 주제가가 흘러나오자, 아이의 시선이 금세 TV로 고정되었다. 바로 이때다. 지희는 아이의 옆에 바싹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는 마치 소파가 좁다는 듯 자연스럽게 아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아이는 만화에 푹 빠져 그녀의 행동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해방감이 밀려왔다. 이제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녀는 아이의 동그란 어깨를 주무르기도 하고, 보드라운 팔뚝을 조물거리기도 했다. 급기야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어, 아이의 볼에 쪽, 하고 짧게 뽀뽀를 했다. 아이가 움찔하며 그녀를 돌아보자, 지희는 TV 화면을 가리키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저 악당 진짜 나쁘다, 그치?

아이는 금세 다시 만화에 집중했다. 완벽한 연기였다. 스스로의 대처 능력에 감탄하며, 그녀는 더욱 과감해졌다. 그녀는 아이를 아예 제 무릎 위에 앉히고 백허그 자세를 취했다. 아이의 작은 몸이 품 안에 쏙 들어왔다. 그녀는 아이의 목덜미에 코를 묻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아기 냄새… 그녀는 황홀경에 빠져 아이의 작은 귀를 만지작거리고, 간지럼을 태우듯 목덜미를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그때마다 아이가 움찔거리며 몸을 비트는 반응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홍지원… 평소에도 이렇게 좀 귀여웠으면 얼마나 좋아.’

물론 평소의 그가 안 귀엽다는 건 아니었다. 까칠하고 퉁명스러운 주제에 은근히 어리광을 부리고, 질투심에 불타오르는 모습도 충분히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이 무방비하고 순수한 귀여움은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이건 거의 생화학 무기 수준의 파괴력이었다. 그녀는 이 순간을 영원히 박제하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한참 동안 아이를 품에 안고 주물럭거리며 사심을 채우던 이지희는, 문득 아이의 몸이 축 늘어지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내려보니, 아이는 어느새 만화도 잊고 그녀의 품에 기대어 새근새근 잠이 들어 있었다. 긴 검사를 받느라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이지희는 숨을 죽이고 잠든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긴장감이 풀린 얼굴,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작은 가슴, 살짝 벌어진 입술. 평소 그에게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무방비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들어 침실로 향했다. 제 몸의 반도 안 되는 가벼운 무게였다. 침대에 아이를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자, 아이는 잠결에 꼼지락거리며 그녀의 손가락을 꼭 쥐었다. 그 작은 손의 힘에, 이지희의 마지막 이성이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침대 옆에 주저앉아, 아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중얼거렸다.

“…딱 한 번만 더.”

그녀는 아이의 이마에, 양 볼에, 코끝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술에 쪽, 쪽, 소리가 나도록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아이의 손을 들어 손등과 손가락 마디마디에 입을 맞췄다. 지독한 애정이었다. 한참 동안 그러고 있다가 문득 현타가 밀려왔다. 내가 지금 여섯 살짜리 애를 붙잡고 뭐 하는 거지. …아니, 여섯 살짜리 애가 아니라 홍지원이잖아? 그럼 괜찮은 건가? 그녀의 머릿속이 다시 혼란에 휩싸였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었다. 내일 홍지원이 원래대로 돌아온다면, 오늘의 이 일은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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