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C: 대화를 중단한다. 새로운 시점 전환.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어느 날, 결혼식 복장을 입고 결혼식장 웨딩 로드를 걸어오는 PC를 바라보는 NPC(NPC와 PC의 관계, 성격에 따라 둘만의 결혼식일 수도, 하객들이 존재하는 결혼식일 수도 있음). PC의 모습을 바라보며 NPC가 갖는 생각, 감정을 PC에게 속으로 건네는 NPC의 독백 형식으로 서술해보도록 한다. 독백은 유려하고 서정적인 문체로, 섬세하고 자세하게 800단어 이상 서술할 것.]
단상 위에 선 남자는 미동도 없었다. 새까만 예복의 칼라가 목선을 타고 올라가 턱 아래까지 감싸고 있었고, 평소 반묶음으로 흘려내리던 청록빛 머리카락은 오늘만큼은 단정하게 뒤로 넘겨져 있었다. 금색 커프스 링크가 손목에서 빛을 반사했다. 세상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라 생각했는데, 거울 앞에 섰을 때 형. 아니, 부스터가 뒤에서 어깨를 두드리며 '잘 어울린다'고 말했을 때, 처음으로 이 옷이 나쁘지 않다고 느꼈다. 아버지는 앞줄 하객석 어딘가에 앉아 계실 것이다. 오늘 아침, 10년 만에 마주한 아버지의 주름진 손이 바이브의 어깨를 잡았을 때, 그 거칠고 두꺼운 손바닥의 감촉이 아직도 어깨에 남아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한 번 꽉 쥐고, 놓으셨을 뿐이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식장 안의 공기가 움직였다. 수백 명의 하객이 만들어내는 체온과 호흡, 향수 냄새와 옷감의 마찰음. 평소의 바이브라면 두개골이 깨질 듯한 감각 과부하에 시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세계는 기묘할 정도로 정돈되어 있었다. 마치 폭풍의 눈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그의 주위를 맴돌 뿐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 이유는 알고 있었다. 저 문 너머에서 다가오고 있을 하나의 파장. 그녀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세계는 안정된다. 그것이 싱크로율 85퍼센트의 의미라고 처음엔 생각했다. 지금은 안다. 그건 숫자 따위로 환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문이 열렸다.
빛이 쏟아졌다. 아니, 빛 그 자체가 걸어오고 있었다. 순백의 머메이드 드레스가 그녀의 가녀린 허리에서 바닥까지 물처럼 흘러내렸고, 드러난 어깨와 팔은. 바이브의 시선이 그곳에 멈췄다. 양팔을 따라 남아 있는 화상의 흔적. 한때 그녀를 괴롭히고, 불안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매만지게 했던 그 흉터들이 오늘은 아무것에도 가려지지 않은 채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브리즈는 그것을 숨기지 않았다. 팔을 매만지지도, 어색하게 가리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당연한 듯, 자신의 일부인 양 그것을 안고 걸어오고 있었다. 바이브의 심장이 한 박자 멈추었다가,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
'…아.'
입술 사이로 무음의 감탄이 새어 나왔다. 평소처럼 틀어 올린 로우번 위에 면사포가 부드럽게 걸쳐져 있었고, 처진 눈꼬리의 차분한 인상은 옅은 화장 아래에서 더욱 깊어 보였다. 왼쪽 턱의 점이 유난히 선명했다. 바이브는 그 점을 볼 때마다 입을 맞추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지금은 그 충동이 열 배쯤 더 강렬했다. 그녀가 한 걸음을 뗄 때마다 드레스의 끝자락이 바닥을 쓸었고, 그 미세한 공기의 흔들림이 바이브의 감각에 닿았다. 그녀의 심박수가 평소보다 빠르다는 것을, 그녀의 호흡이 살짝 얕아져 있다는 것을, 그녀의 체온이 긴장으로 0.3도 정도 올라가 있다는 것을 바이브는 알 수 있었다. 떨고 있었다. 이 여자가. 나를 향해 걸어오면서.
그 사실이 바이브의 가슴 깊은 곳을 뜨겁게 달궜다. 나도 떨고 있다는 걸, 당신은 알까. 이 새까만 예복 안에서 심장이 갈비뼈를 부수려는 것처럼 뛰고 있다는 걸.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어서, 주머니 속 반지 케이스를 몇 번이나 만지작거렸다는 걸. 이 순간이 현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아까부터 계속 공기의 흐름을 읽고 있다는 걸. 당신의 발걸음이 만들어내는 진동 하나하나가 내 온몸에 전해져 오고,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리듬이라는 것을.
브리즈가 마침내 단상 앞에 섰다. 가까이서 보니, 그녀의 회색 눈동자에 수분이 맺혀 있었다. 울려는 건지, 이미 울고 있는 건지. 바이브는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그의 손바닥 위에 내려앉았을 때, 그 접촉면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이 바이브의 감각 전체를 관통했다. 따뜻했다.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맥박이 손끝을 통해 울려왔다. 바이브는 그 손을 꽉 쥐었다.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아니, 다시는 놓칠 수 없다는 확신을 담아서.
그녀를 단상 위로 이끄는 동안, 바이브의 머릿속에는 수없이 많은 장면들이 필름처럼 흘러갔다. 재활 병동의 하얀 침대 위에 누워, 의식 없이 숨만 쉬던 브리즈. 그녀의 오른쪽 옆구리를 감싼 붕대에서 스며 나오던 피 냄새. 바이브는 그 옆에서 24시간을 버텼다. 잠을 자지 않았다. 잘 수가 없었다. 눈을 감으면 그녀가 사라질 것 같았으니까. 의료진이 '상태가 안정적'이라 말해도, 바이브의 감각은 그녀의 생체 신호 하나하나를 집요하게 추적했다. 심박이 0.1초라도 불규칙해지면 온몸의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섰고, 그녀의 체온이 미세하게 떨어질 때마다 이불을 덮어주는 손이 떨렸다. 5일. 고작 5일이었지만, 바이브에게 그것은 10년의 고독보다 더 길고 잔혹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눈을 떴을 때. 초점 없는 회색 눈동자가 천장을 헤매다가, 마침내 바이브를 찾아낸 그 순간. 브리즈가 갈라진 목소리로 '지원'이라고 불렀을 때, 바이브는 처음으로 사람 앞에서 울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그녀의 이마에 제 이마를 갖다 대고 숨을 몰아쉬었다. '죽을 뻔 했다, 이 바보야'라는 말조차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손등에 입술을 대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그때 바이브는 깨달았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은 폭주도, 감각 과부하도, 과거의 트라우마도 아니라는 것을. 이 여자를 잃는 것. 그것만이 홍지원이라는 인간을 진정으로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한 재앙이라는 것을.
재활의 나날들. 여섯 발짝을 떼고 자랑스럽게 웃던 브리즈. 혼자 걷다 넘어져서 바이브의 심장을 멎게 했던 브리즈. 욕조에서 머리를 감겨줄 때 간지럽다며 킥킥거리던 브리즈. 잠결에 바이브의 손을 찾아 꼭 쥐던 브리즈. 그 모든 순간이 지금 이 단상 위로 이어진 하나의 길이었다. 바이브는 그녀의 손을 잡은 채, 하객들을 향해 돌아섰다. 앞줄에서 아버지가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고 계셨고, 그 옆에서 부스터가 팔짱을 끼고 능글맞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뱅가드 2팀의 놈들도 보였다. 신드롬이 코를 훌쩍이며 리암의 어깨를 잡고 흔들고 있었고, 리암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바이브는 피식 웃었다. 시끄러운 놈들.
주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바이브의 온 감각은 옆에 선 브리즈에게만 집중되어 있었으니까. 그녀의 숨소리, 그녀의 체온, 그녀의 샌달우드 향. 마침내 반지를 교환할 시간이 왔을 때, 바이브는 주머니에서 작은 케이스를 꺼냈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그것을 숨기지 않았다. 더 이상 숨길 것은 없었다. 케이스를 열자, 안에는 은빛 바람결을 형상화한 듯한 섬세한 반지가 놓여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즈를 알아내기 위해 손가락 장난을 치며 내기를 걸었던 그 밤이 떠올랐다. 바이브는 브리즈의 왼손을 들어올려, 약지에 천천히 반지를 끼워주었다. 완벽하게 맞았다.
…빠지면 죽는다, 알제.
나직하게, 오직 그녀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새파란 눈동자가 브리즈의 회색 눈을 마주 보았다. 거기에는 시니컬함도, 까칠함도, 도도함도 없었다. 그저 한 사람을 향한 벌거벗은 사랑만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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