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C: 이전 RP를 완전히 중단한다. 며칠 뒤, 완전히 새로운 시점부터 다시 시작한다. PC와 NPC는 함께 외출을 했다가, 모종의 사유로 서로를 잃어버린다. 단말기 배터리가 떨어져 연락을 할 수도 없는 상황. NPC는 주변 사람들에게 PC를 묘사하며 본 적 있는지를 물어보고 다닌다. 이 때 NPC가 PC를 어떻게 묘사하는지 1,000단어 이상 출력하시오. 페르소나, 유저노트, 이전 대화 등을 참고하여 코믹하게 출력한다.]
그날은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며칠간 이어진 궂은 날씨가 거짓말처럼 걷히고, 부산의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파랗게 빛났다. 이지희는 이런 날 숙소에만 있는 건 죄악이라며, 기어코 홍지원의 팔을 잡아끌고 번화가로 나섰다. 평소라면 인파에 질색하며 단칼에 거절했겠지만, 유독 신이 나서 조잘거리는 그녀의 얼굴을 보니 차마 뿌리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마지못해 따라나선 척, 그녀의 손에 이끌려 복잡한 시장 한복판으로 들어섰다.
문제는 한순간에 일어났다. 갑자기 길 한복판에서 벌어진 깜짝 할인 행사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고, 단단히 잡고 있던 손을 찰나의 순간 놓쳤다. 인파에 휩쓸려 몇 걸음 떠밀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 이지희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젠장. 홍지원은 나지막이 욕설을 씹어뱉었다. 단말기를 꺼내 들었지만, 액정에는 배터리 부족을 알리는 냉혹한 아이콘만 깜빡이다 이내 까맣게 죽어버렸다. 어제 충전하는 걸 깜빡한 제 자신에게 또 한 번 욕이 튀어나왔다.
그의 예민한 감각이 비상 신호를 울렸다. 사방에서 밀려드는 소음, 정돈되지 않은 공기의 흐름, 온갖 음식과 사람들의 냄새가 뒤섞여 머리를 어지럽혔다. 감각 과부하의 전조였다. 평소라면 그녀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고요하게 잠잠해졌을 감각의 폭풍이, 주인을 잃고 날뛰기 시작했다. 그는 눈을 감고 공기의 미세한 흐름 속에서 그녀의 파장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내뿜는 혼탁한 기운 속에서 그녀의 고유한 ‘산들바람’을 포착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 이 넓은 곳에서, 이 많은 사람 속에서 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홍지원은 마른 입술을 씹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 감각의 지옥 속에서 혼자 버티다간, 그녀를 찾기는커녕 폭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는 평생 해본 적 없는,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일을 해야만 했다. 바로, 이 복잡한 시장의 ‘일반인’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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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첫 번째 목표는 근처 액세서리 가게 앞에서 한가롭게 물건을 구경하던 젊은 커플이었다. 홍지원은 최대한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게, 그러나 본투비 시니컬함은 감추지 못한 채 그들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의 험악한 표정에 커플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저기, 뭐 하나만 묻자.
완전히 사람 잡으러 가는 듯한 말투였다. 남자가 여자를 제 등 뒤로 감싸며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홍지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혹시 여자 하나 못 봤나? 키는 요만하고, 그는 제 가슴팍 언저리에 손날을 대 보였다. 나보다 한참 작다. 머리는 갈색인데, 부스스하다. 맨날 묶고 댕기는데, 오늘은 풀었는지 어쨌는지… 아무튼 좀 정신 사나운 머리다. 눈은 또 쳐져가지고 순하게 생겼는데, 그렇다고 진짜 순한 건 아이다. 사람 약 올리는 재주가 있다. 결정적으로, 왼쪽 턱 밑에 점 있다. 자세히 안 보면 모른다. 니들은 못 봤을 수도 있겠다. 아, 그리고…
그는 잠시 말을 끊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했다. 이 여자를 특정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특징.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웃는 게 좀 특이하다. 뭐라 해야 하나. 바보같이 웃는데, 보고 있으면… 아무튼 좀 그렇다. 혹시 방금 이 주변에서 좀 시끄럽게 웃는 여자 못 봤나? 아, 옷은… 뭐 입었더라. 내가 사준 건데. 흰색 원피스. 내가 다른 놈들 보라고 사준 게 아닌데, 기어코 쳐 입고 나와가지고는…
그의 설명은 점점 ‘실종자 인상착의 설명’이 아니라 ‘여자친구 뒷담화’로 변질되고 있었다. 커플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볼 뿐이었다. 홍지원은 답답하다는 듯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
됐다. 니들한테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그는 제풀에 포기하고는 신경질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뒤로 ‘자기 여자친구 흉보는 사람 처음 보네’, ‘근데 왜 얼굴은 빨개져?’ 하는 커플의 소곤거림이 바람을 타고 들려왔지만, 애써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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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목표는 시장 어귀에서 과일을 팔고 있는 인심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이번에는 조금 더 전략적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그는 지갑에서 지폐 한 장을 꺼내, 사지도 않을 사과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지매요. 이 근처에서 혹시… 이상한 여자 하나 못 봤습니까.
돈을 건네며 묻는 그의 말에 아주머니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 여자라니, 총각. 세상에 이상한 사람이 한둘이가.
아니, 그… 생긴 건 멀쩡하다. 오히려 내보다 나이도 많은데, 하는 짓은 애다. 맨날 뭘 흘리고 댕기고, 길도 잘 잃어버린다. 내가 없으면 암것도 못하는 여자다.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스스로 움찔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나이는 서른 가까이 쳐먹었는데, 입맛은 초딩이다. 매운 거 환장하고, 단 거 좋아하고. 근데 또 요리는 잘한다. 웃기는 여자다, 진짜. 혹시… 이 근처에서 뭐 사 먹고 있는 여자 없었습니까? 떡볶이나… 어묵 같은 거. 아마 십중팔구 뭘 입에 물고 있을 낍니다.
그의 설명은 점점 더 구체적이고 사적인 영역으로 파고들었다. 아주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아이고, 총각. 지 마누라 흉을 그렇게 보는 남정네는 또 첨 보네. 그래가 사랑받겠나?
마누라 아입니다!
그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가 너무 큰 나머지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를 쳐다봤다. 그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목소리를 낮췄다.
…아무튼, 그런 여자 못 봤냐 이 말입니다. 체향이 좀 특이하다. 나무 냄새 같기도 하고, 절간 냄새 같기도 한데… 하여튼 맡으면 좀…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냄새다. 혹시 그런 냄새 안 났습니까?
이제는 후각 정보까지 동원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
총각아, 여는 시장이라 온갖 냄새가 다 섞인다. 그런 냄새는 못 맡았다. 마누라 아니라믄 애인이겠네. 얼른 찾아봐라. 그런 아가씨 놓치면 평생 후회한다.
홍지원은 대답 대신 사과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입안에 퍼지는 단맛이 왠지 모르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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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초조함은 극에 달했다. 감각은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머리는 지끈거렸다. 그는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관광 안내소 부스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어린 직원을 흔들어 깨웠다. 직원은 잠이 덜 깬 얼굴로 그를 올려다봤다.
사람, 사람을 찾는다. 방송, 방송 좀 해줘라.
그의 목소리는 다급함에 살짝 떨리고 있었다. 직원이 정신을 차리고는 매뉴얼대로 펜과 종이를 꺼내 들었다.
네, 손님. 인상착의를 말씀해주세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다.
뜬금없는 한마디였다. 직원도, 말을 뱉은 홍지원 자신도 잠시 멈칫했다. 그는 당황해서 헛기침을 하며 말을 정정했다.
아니, 그게 아이고. 그러니까…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렇다는 게 아이라, 그냥 내 눈에만… 아, 씨! 다시 하께. 그는 숨을 한번 크게 고르고, 최대한 침착하게, 하지만 속마음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한 채 그녀를 묘사하기 시작했다. 이름은 이지희. 나이는 스물아홉. 키는 160. 갈색 머리에 회색 눈. 왼쪽 턱에 점 있고, 팔에… 팔에 흉터가 있다. 근데 그 흉터, 흉한 거 아이다. 절대로. 다른 놈들은 쳐다도 보지 마라 캐라. …그리고… 항상 나만 보고 웃어주는 여자다. 다른 놈한테 웃어주는 거 봤다? 바로 신고해라. 내가 찾아갈 끼다.
설명은 어느새 협박으로 바뀌어 있었다.
가끔 뿔테 안경을 쓰는데, 진짜 귀엽다. 아, 이건 방송에 내지 마라. 나만 알 거다. 그리고… 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바보인데, 또 내가 위험할 땐 세상에서 제일 강한 여자다. 바람의 힘을 쓰는 가이드인데, 내 폭풍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내 세상의 중심 같은 기다.
말을 마친 홍지원은 스스로의 고백에 얼굴이 새빨개져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지금 길 잃은 파트너를 찾는 게 아니라, 온 시장에 대고 공개 프러포즈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