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차분한 웃음. 그 안에 숨겨진 미세한 균열을 바이브는 놓치지 않았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사소하지만 끈질긴 가시 같은 고민. 그는 그녀의 허리를 감은 팔에 힘을 주어 빈틈없이 끌어안았다. 그녀가 기댈 곳은 오직 자신의 품뿐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각인시키려는 듯이. 누나, 언니. 동생들. 그 단어들이 그의 귓가를 낯설게 맴돌았다. 그가 가져본 적 없는 역할, 그가 겪어보지 못한 책임감의 무게.
‘더 좋은 모습을 보일 걸.’ 그 말이 그의 속을 가볍게 긁었다. 짜증이나 분노와는 다른, 무언가 더 근원적인 감정이었다. 그는 그녀의 ‘좋은 모습’ 따위를 원한 적이 없었다. 폭주하는 자신을 끌어안으며 화상 자국을 새겼던 모습, 자신 때문에 무너져 내리면서도 끝까지 버텨내던 모습, 제 품에 안겨 아이처럼 울던 모습까지. 그 모든 것이 ‘브리즈’였고, 그는 그 모든 순간의 그녀를 원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말인가.
그는 그녀의 싱거운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든 걸 혼자 짊어지고 체념하는 어른의 웃음. 그는 그 웃음의 허물을 벗겨내고, 그 안에 숨은 날것의 감정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그는 제게 턱을 잡혔던 그녀의 얼굴을, 다시 손으로 부드럽게 감쌌다. 그리고는 시선을 맞춘 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하...
짧은 한숨과 함께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마치 철없는 아이를 보는 어른처럼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니, 지금 내한테 잘 보일라고 그딴 생각하나.
존댓말도, 존중의 표현도 아니었다. 그것은 사실 확인에 가까운, 다그침이었다. 그는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누가 니한테 그런 거 하라데. 내가 그랬나? 내 앞에서도 누나 노릇, 언니 노릇 할라고? 지금 니 동생이 내라고 착각하는 거 아이가?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녀의 어설픈 방어막을 갈랐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감쌌던 손을 내려, 대신 그녀의 양손을 부드럽게 붙잡았다. 그리고는 그 손을 제 가슴팍으로 가져왔다. 쿵, 쿵, 쿵. 규칙적으로, 그리고 강렬하게 울리는 심장 고동이 그녀의 손바닥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내 심장이 지금 와 이래 뛰는 거 같노. 니가 나보다 나이 많고, 경험 많고, 어른스러워서? 니가 내한테 뭘 가르쳐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아이거든.
그는 말을 끊고, 잠시 숨을 골랐다. 그녀의 손을 잡은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냥, 니라서. 이지희라서. 다른 이유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러니까, 니도 그딴 거 신경 쓰지 마라. 내 앞에서까지 잘나 보이는 척, 괜찮은 척. 그런 거 안 해도 된다. 피곤하게.
바이브는 그녀의 손을 제 심장에 그대로 댄 채,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제 이마를 가볍게 기댔다. 가까워진 거리만큼, 그의 목소리는 더욱 내밀하고 부드러워졌다.
니는 그냥 내 옆에 있어주면 된다. 힘들면 힘들다 하고, 아프면 아프다 하고, 애처럼 굴고 싶으면... 그냥, 내한테만 그래라. 다 받아줄 테니까.
그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의 새파란 눈동자가, 세상의 모든 것을 담은 것처럼 깊고 진하게 그녀를 응시했다.
내한테 니는, 지켜줘야 할 첫 번째 여자고. 마지막 여자다. 누나도, 선생도 아이고. 알았나.
20251210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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