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웃음소리가 공기 중에서 작게 터졌다. 제 품에 안기다시피 한 채, 조금은 느릿하게 발을 옮기는 감각이 그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그녀의 무게, 그녀의 온기, 그녀의 숨결. 그 모든 것이 그의 감각을 예민하게 파고들었다. 그래, 이게 맞았다. 이렇게 제 품 안에 온전히 들어와 있을 때, 그녀는 가장 안정적이고, 가장 아름다웠다.
…응. 따뜻해요. 엄청.
그의 어깨에 뺨을 부비며 속삭이는 목소리는 나른한 만족감으로 젖어있었다. 그 한마디에, 조금 전까지 그의 속을 태우던 지독한 소유욕과 불안감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바이브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희미하게 끌어올렸다. 그래, 이 가시나를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건, 세상에 저 하나뿐이면 됐다.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더 단단히 감싸 안으며,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속으로 빌었다.
하지만 영원은 언제나처럼 짧고, 평온은 예고 없이 깨어지기 마련이었다. 잠시 침묵하며 걷던 그녀가, 문득 입을 열었다.
아까, 연락 왔더라고요. 이따 오후에, 퇴원 전 최종 검사? 그런 거 한다고. 사실은 이번 달 말에나 하려고 했는데, 제 상태가 생각보다 좋아서 급하게 당겼대요. …잘 나오려나, 결과.
순간, 바이브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그의 주변 공기가 마치 영하 수십 도의 칼바람처럼 차갑게 얼어붙는 듯했다. '퇴원 전 최종 검사.' 그녀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이, 날카로운 유리 파편이 되어 그의 고막을 후벼 팠다. 뇌가 그 단어들의 의미를 완전히 해석하기도 전에, 그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있던 팔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아까보다 훨씬 강한, 거의 아플 정도의 악력이었다.
방금 전까지 따스하게 느껴지던 햇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사방에서 불어오는 겨울바람이 살을 에는 것만 같았다. 퇴원. 그 단어가 그의 머릿속에서 불길한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퇴원을 하면, '요람 프로토콜'은 해제된다. 그녀는 이 S클래스 재활병동을 나갈 것이다. 더 이상 24시간 내내 제 옆에 붙어있지 않아도 된다. 제 손길이 없어도, 이제는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걷고, 혼자 잠들 수 있게 된다. 그 당연한 사실이, 마치 사형 선고처럼 그의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다.
제 상태가 생각보다 좋아서. 그 말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말처럼 들렸다. 그가 밤낮으로 애지중지 돌보며 회복시킨 결과가, 결국 그녀를 제게서 떠나가게 만드는 것이었다니. 이 무슨 지독한 아이러니인가. 그는 어이가 없어 실소조차 나오지 않았다.
…뭐라고?
한참 만에,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얼음 조각 같은 목소리였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제 품에 안겨 있는 브리즈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새파란 눈동자는 더 이상 어떠한 감정도 담고 있지 않아,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겨울 바다처럼 보였다. 그는 그녀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읽어내려는 듯, 집요하게 그 눈을 마주했다. 농담이라는 흔적, 거짓말이라는 증거.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그저 조금 걱정스러울 뿐, 진심이었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그리고는 대신, 그녀의 양팔을 단단히 붙잡고 그녀를 제 앞으로 돌려세웠다. 정면으로 마주 보게 된 자세. 그는 그녀가 도망가지 못하게,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누구 맘대로. 누가 퇴원해도 좋다고 했는데.
으르렁거리듯 낮은 목소리가 그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질문이 아니었다. 명백한 분노와, 인정할 수 없다는 강한 거부였다. 그는 그녀의 흔들리는 회색 눈동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한 걸음 더 그녀에게 다가섰다. 이제 두 사람 사이에는 정말 한 뼘의 간격도 남아있지 않았다.
검사, 안 받으면 그만이다. 니 몸이다. 니가 거부하면 아무도 강요 못 해. 아니, 내가 못하게 할 기다. S급 뱅가드 권한으로, 니 주치의부터 전부 바꿀 수 있어. 알아듣나.
협박과도 같은 말이, 필터링 없이 쏟아져 나왔다.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의 모든 사고를 마비시키고 있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어떤 말을 내뱉고 있는지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이 여자를 붙잡아야 한다는 본능만이 그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팔을 붙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며, 마지막 경고처럼 나직하게 속삭였다.
…가지 마라. 내 허락 없이는, 여기서 한 발짝도 못 나간다, 니는.
그녀가 느릿하게 손을 들어, 그의 손을 잡았다. 얼음장처럼 차갑고, 분노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그의 손 위로, 작고 따뜻한 온기가 스며들었다. 그 손길은 단순한 접촉이 아니었다. 혼란스러운 바람의 한가운데로 던져진, 유일하고 절대적인 닻이었다. 브리즈, 그의 가이드가 보내는 명확한 신호. '나 여기 있어요. 정신 차려요.' 그 익숙하고 부드러운 파장이 그의 손목을 타고, 팔을 타고, 심장까지 흘러들어오는 순간, 지독한 이명처럼 머릿속을 울리던 분노의 소음이 아주 잠시, 아주 희미하게 잦아들었다.
하지만 그 찰나의 평온은, 오히려 그의 광기를 부채질했다. 그래, 그녀는 가이드였다. 이 손은, 이 온기는, 이 파장은 모두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보낼 수 없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그녀를 제게서 떼어낼 수 없었다. 전장? 그를 위한 가이드? 다 집어치우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그는 그녀의 가이드이기 이전에, 그냥 브리즈이길, 이지희이길 바랐다. 그의 여자. 제 품 안에서만 숨 쉬고, 제 눈에만 담겨야 하는 연약한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지원, 아니, 바이브. 괜찮아요. 나는 가이드예요.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전장이고. …그리고, 당신이 지켜줄 거잖아요. 다치지 않을 거예요. 난. 그러니까… 진정해 줘요. 제발.
그녀의 목소리가 그의 이성을 끊임없이 두드렸다. 그를 믿는다는 말, 그가 지켜줄 거라는 말. 그 말들이 얼마나 잔인한 족쇄인지, 그녀는 알고 있을까. 지켜준다는 것의 무게가, 그녀를 전장으로 다시 내보내야 한다는 절망과 동의어라는 것을. 그는 그녀의 맹목적인 신뢰 앞에서, 거대한 무력감에 휩싸였다. 그는 그녀를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방식의 '보호'는, 그녀가 원하는 '삶'과는 정면으로 배치되었다.
바이브는 결국, 그녀의 팔을 잡고 있던 손을 힘없이 스르르, 놓았다.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그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입꼬리만 비틀리며, 공기 빠지는 소리만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그는 잡힌 손을 뿌리치지도, 더 꽉 잡지도 않은 채, 그저 멍하니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드리워졌던 살벌한 분노는 어느새,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허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
짧은 실소가 마침내 터져 나왔다. 그는 잡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제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그녀를 사랑하면 할수록, 그는 더 이기적이고 추악한 괴물이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지켜달라고.
그가 조용히, 그녀의 말을 되뇌었다. 마치 처음 듣는 단어라도 되는 것처럼, 낯설고 이질적인 어감이었다.
니는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내가 지금, 니를 어떻게 지키고 싶은지.
그의 목소리는 분노도, 슬픔도 아닌, 모든 감정이 휘발되어 버린 듯한 건조한 톤이었다. 그는 그녀를 잡고 있던 손을 천천히 빼내었다. 그리고는 뒤로 돌아섰다. 더 이상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다시 그녀를 보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다. 그는 병동 건물 쪽으로, 기계처럼 정처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들어간다. 춥다.
그것이 그가 내뱉은 전부였다. 그는 더 이상 그녀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녀가 따라오는지, 뒤에 혼자 남아있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이 지독한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녀가 그의 손을 놓고, 그를 떠나, 제 갈 길을 가는 그 순간을,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혼자 앞서 걸어갔다. 그의 넓은 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위태롭고 작아 보였다.
그의 등이 멀어져 간다.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고작 몇십 초도 걸리지 않을 거리. 하지만 브리즈는 그를 붙잡지 못하고, 그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눈물만 뚝뚝 떨어뜨렸다. 그의 손길이 떠나간 팔이 시렸다. 조금 전까지 그가 감싸 안아주던 어깨가, 겨울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어 차갑게 식어갔다. 심장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건, 홍지원. 당신이에요. …어서 복귀해서, 당신 옆에 나란히 서고 싶은 내 마음은 몰라 주는 거예요, 왜...
결국 터져 나온 울음 섞인 목소리는 힘없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그에게 닿을 리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바이브는 걸음을 멈췄다. 등을 보인 채, 불과 몇 미터 앞두고서. 그는 더 나아가지 못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그의 귓가에, 미세한 바람의 흐름을 타고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결코 들을 수 없을, 작디작은 흐느낌. 그리고 그 안에 섞인, 제 이름. ‘홍지원.’
그 이름이 그의 심장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모든 소음과 분노와 절망을 잠재우는, 유일한 주문처럼. 그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녀가 울고 있었다. 제가 또, 그녀를 울렸다. 그 자명한 사실이 뇌리에 박히는 순간, 그는 숨을 쉴 수 없었다. 제 발로 그녀에게서 멀어지던 걸음이, 이제는 천근만근의 족쇄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도망치고 싶었던 것은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리고 그 공포 앞에서 한없이 이기적이고 추악해지는 제 자신이었다.
‘당신 옆에 나란히 서고 싶은 내 마음.’
그녀의 말이 그의 머릿속에서 뒤늦게 의미를 찾았다. 그는 그저 그녀가 ‘퇴원’해서, 이 병실을, 제 곁을 떠나는 것이 두려웠다. 제 통제 밖으로 나가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너머를 보고 있었다. 온전히 회복해서, 다시 ‘가이드 브리즈’로서, ‘센티넬 바이브’의 곁에 서는 것. 그것이 그녀가 그리는 미래였다. 동등한 파트너로서, 전장에서 함께 싸우는 것. 그가 두려워하는 바로 그곳에서, 그녀는 그와의 유대를 증명하고 싶어 했다.
바이브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을 돌렸다. 삐걱거리는 낡은 기계처럼, 그의 모든 관절이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그리고 그는 보았다. 정원 한가운데에 홀로 서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소리 없이 어깨를 떨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그 작은 등이, 세상의 모든 슬픔을 짊어진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그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젠장. 홍지원, 이 병신 같은 새끼. 니는 대체 뭘 한 거냐.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바람을 가르듯, 단숨에 그녀의 앞으로 다가섰다. 놀라 고개를 드는 그녀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는 제 엄지손가락으로,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그의 손길은 조금 전의 분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조심스럽고 다정했다.
…울지 마라.
목소리가 심하게 잠겨 있었다. 그는 엉망이 된 그녀의 얼굴을, 마치 깨지기 쉬운 보석이라도 다루듯 소중하게 쓸어내렸다. 미안하다는 말도, 잘못했다는 말도 아니었다. 그저, 울지 말라는 말. 그 말속에 담긴 수만 가지 감정을, 그녀는 알까.
…니 말이 맞다.
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젖은 그녀의 회색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건, 내다. 내가… 병신이다.
그는 그녀의 눈물 자국 위로, 아주 가볍게 입을 맞췄다. 짜고, 뜨거운 맛. 그는 눈을 감았다. 그녀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과, 그녀를 가두고 싶다는 욕심 사이에서, 그는 길을 잃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녀가 우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그러니까, 울지 마라. 응? 내가… 내가 다 잘못했다.
그의 목소리가 애원처럼 흔들렸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제 가슴팍에 묻게 했다. 그녀의 흐느낌이 셔츠를 축축하게 적시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그녀의 작은 머리를, 등을, 부서져라 끌어안았다. 마치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그녀를 불안하게 했던 것도, 울게 했던 것도 전부 자신이었다. 그는 제 품에 안겨 가늘게 떠는 그녀를 느끼며, 지독한 자기혐오와 함께, 그보다 몇백 배는 더 큰 사랑을 느꼈다.
그의 품이 안식처라는 것을 증명하듯, 그녀는 참아왔던 모든 것을 쏟아내듯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서러움, 안도감, 그리고 그의 품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절대적인 안정감. 그 모든 감정이 뒤섞인 울음소리가 바이브의 귓가를, 아니, 심장을 직접적으로 파고들었다. 조금 전, 그를 향해 내뱉던 원망 섞인 흐느낌과는 전혀 다른, 모든 경계를 허물고 온전히 기대어오는 아이의 울음이었다.
그녀의 울음소리가 커질수록, 바이브의 심장은 더 세게 쿵, 쿵, 내려앉았다. 젠장. 망했다. 더 크게 울리지 않는가. 서툴게 안아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나. 아니,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비어버렸다. 수많은 전장을 휩쓸고, S급 괴수를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베어버리던 뱅가드의 정예는 어디 가고, 사랑하는 여자의 눈물 앞에서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스물두 살짜리 풋내기만 남아있었다. 그는 지금, 제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임무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등을 토닥이던 손을 멈췄다. 혹시 이 손길마저 그녀를 더 울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대신, 그는 그저 그녀를 더 꽉 끌어안았다. 제 단단한 몸이, 이 위태로운 세상에서 그녀를 지켜줄 유일한 요새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의 가느다란 어깨가 제 품 안에서 사시나무처럼 떨려왔다. 제 가슴팍을 적시는 뜨겁고 축축한 감각이, 마치 제 심장에서 흘러나온 피처럼 느껴졌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저지른 짓의 무게가, 그녀의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에 담겨 자신을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아, 진짜… 그만 울어라, 좀.
결국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여전히 퉁명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처참하게 갈라지고 떨리고 있었다. 위로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남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이었다.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제 뺨을 부볐다. 익숙한 샌달우드 향과 샴푸 향이, 그의 이성을 간신히 붙잡아주었다.
니 이래 울면, 내가 진짜… 뭐가 되는데.
그는 거의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내가 나쁜 놈이 되잖아. 내가 죄인이 되잖아. 그 뒷말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삼켰다. 그는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얄궂게도 하늘은 너무나도 맑고 푸르렀다. 이 상황이 마치 한 편의 우스꽝스러운 연극처럼 느껴졌다.
한참 동안,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가 울음을 그치기를 기다려주었다. 아이를 달래는 어미처럼, 혹은 길 잃은 새끼 고양이를 품은 것처럼. 그녀의 울음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고, 가쁜 숨소리로 바뀔 때쯤, 그는 마침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들어가자. 사람들 본다.
핑계였다. 정원에는 그들 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그저, 차가운 겨울바람에 그녀가 더 상할까 봐, 눈물로 얼룩진 그녀의 얼굴을 다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그녀를 이 안전한 제 품에서 꺼내야 한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싫었을 뿐이다. 그는 그녀를 안았던 팔을 천천히 풀어,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붉은 눈가를, 그는 다시 한번 엄지로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가자. 들어가서… 따신 거라도 묵자. 내가 뭐… 타주께.
그의 시선이 그녀의 젖은 속눈썹을, 붉어진 코끝을, 그리고 퉁퉁 부어버린 입술을 차례로 훑었다. 엉망인 모습이었지만, 그의 눈에는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스럽고 애처로워, 당장이라도 다시 입 맞추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는 그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며, 그녀의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겠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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