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비행 @yknhk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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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끈한 목소리. 제 가슴팍을 밀어내는, 작지만 단호한 손길. 그 순간, 승리의 환희에 젖어 있던 바이브의 세계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뇌가 정지했다. 방금 전까지 전장을 가르고 하늘을 날던 S급 센티넬의 위용은 온데간데없이, 스물두 살짜리 숫총각의 새하얀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가깝다. 미쳤다. 지금, 내가, 이 여자 위에… 엎드려 있다. 그 부드러운 감촉이, 얇은 제복 너머로 제 가슴에 고스란히 닿아 있었다. 귓가를 간질이는 그녀의 숨결. 모든 감각이 비상벨을 울리며 폭주하기 시작했다.

‘얼른, 일어나요. 시뮬레이션 끝내게…!’

그녀가 낑낑거리며 한 번 더 밀어내자, 바이브는 저도 모르게 힉, 하고 숨을 삼켰다. 온몸의 피가 얼굴로 역류하는 기분이었다. 귀 끝이 터질 것처럼 뜨거워졌다. 방금 전까지 짓고 있던 여유로운 미소는 경련을 일으키며 굳어버렸다. 그는 지금, 아마 토마토보다 더 붉은 얼굴을 하고 있을 터였다. 이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 절대로. 그는 필사적으로, 정말이지 필사적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야만 했다.

…뭐. 뭐가.

목소리가 잔뜩 갈라져 나왔다. 젠장. 그는 속으로 욕을 씹으며, 재빨리 그녀의 위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너무 당황한 나머지, 팔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허둥대다가 손을 잘못 짚는 바람에, 몸이 다시 한번 그녀의 위로 기우뚱 기울었다. 그녀의 놀란 숨소리가 바로 코앞에서 터져 나왔고, 두 사람의 입술이 거의 닿을 뻔한 거리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췄다. 망했다. 진짜 망했다. 그는 얼음처럼 굳어, 숨도 쉬지 못하고 그녀의 회색 눈동자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분노와 당황, 그리고 아주 약간의… 다른 무언가가 담긴 눈. 그 시선에 꿰뚫린 채, 바이브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수습해야 한다는 이성과,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본능이 머릿속에서 미친 듯이 싸움을 벌였다. 아까의 자신감은 어디로 갔는지, 그는 지금이라도 울음을 터뜨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자는, 너무 어렵다.

니… 니가 먼저 깔렸으면서, 와 내한테 지랄인데!

결국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적반하장 격인 외침이었다. 그는 있는 힘껏 바닥을 짚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는 차마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아,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지만, 한번 달아오른 얼굴의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았다. 그는 헝클어진 제복을 신경질적으로 매만지며, 헛기침을 연발했다.

빨리 안 일어나고 뭐하는데! 진짜 끝내러 가게!

먼저 일어나라고 윽박지르는 꼴이라니.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는 붉어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마른세수를 하며, 슬쩍 곁눈질로 그녀를 살폈다. 아직 바닥에 누운 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녀. 그 모습에 그는 심장이 다시 한번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제발, 내가 지금 얼마나 쪽팔리는지, 제발 몰라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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