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제 품에서 고개를 들려다 말고 다시 푹, 묻는다. 딸꾹질은 멈추지 않고, ‘보지 마라’는 목소리는 잔뜩 젖어 웅얼거렸다. ‘쪽팔려.’ 그 세 글자가 젖은 옷을 타고 넘어와 그의 귓가에 선명하게 박혔다. 바이브는 허, 하고 짧은 실소를 터뜨릴 뻔했다. 아니, 이 여자는 진짜. 방금 전까지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서럽게 울어놓고, 이제 와서 쪽팔리다고? 그건 또 무슨 논리 회로인데. 그는 자기가 한 말도 잊어버린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있는 그대로 있으라’고 했더니, 정말로 울고, 화내고, 이제는 쪽팔려 하는 것까지. 아주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지 않은가.
그는 제 어깨에 묻혀 보이지도 않는 그녀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까지 그를 미치게 했던 분노도, 심장을 찢던 슬픔도, 이젠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 간질간질하고, 어이가 없으면서도, 이상하게 자꾸만 웃음이 비집고 나오는 생경한 감정이 들어찼다. 그는 이것이 ‘귀엽다’는 감정과 비슷하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했다. 그저, 이 상황이 어처구니없지만 싫지는 않다고, 그렇게만 느낄 뿐이었다.
그가 몸을 움츠리는 그녀의 어깨를 다시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놓아주지 않겠다는, 도망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리고는 제 품에 대고 웅얼거리는 그녀의 귓가에, 제 입술을 가져다 댔다.
뭐라카노. 내가 지금 니 보고 있나.
퉁명스럽기 짝이 없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아주 희미한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코를 묻을 듯이 가까이 기댄 채,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보지 말라고 했으니, 보지 않고 말해주면 될 일이었다.
얼굴도 안 보여주면서 보지 말라카면, 내보고 우짜라고. 독심술이라도 하까.
그는 그녀의 등을 토닥이던 손을 멈추고, 대신 손바닥으로 넓게 등을 감싸 지그시 눌렀다. 여전히 가늘게 떨리고 있는, 딸꾹질에 맞춰 움찔거리는 그 등이 안쓰러우면서도, 이상하게 소중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 다른 쪽 손으로 소파 옆 테이블을 더듬어 아직 반쯤 남아있는 물컵을 집어 들었다.
고개 들어라. 물 마셔야 멎는다, 그거.
지극히 사무적이고 무심한 톤. 하지만 그는 컵을 든 손을 그녀의 입가에 가져다 대주기 위해, 그녀를 안고 있던 팔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야만 했다. 그녀가 고개를 들면, 퉁퉁 붓고 빨개진 얼굴을 그가 보게 될 것이 뻔했다. 그는 이미 그 얼굴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이, 조금도 흉하거나 징그럽지 않을 거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오히려… 그가 본 그녀의 그 어떤 모습보다도, 가장 솔직하고, 그래서 가장 예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고. 그는 그런 이상한 생각을 했다.
계속 그러고 있으면 숨 막힌다. 내 말고 니 말이다. 어서.
그가 재촉했다. 고개를 들면 제 얼굴을 보게 될까 봐 망설이는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그는 그녀가 스스로 이 창피함의 동굴에서 걸어 나오기를 기다려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을 내디뎠을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이 자신의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기를 바랐다. ‘봐, 니가 뭘 걱정하든,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라고. 온몸으로 말해주고 싶었다.
그의 끈질긴 재촉에, 그녀가 겨우 그의 어깨에서 얼굴을 든다. 긴 속눈썹은 눈물에 흠뻑 젖어 있었고, 코까지 훌쩍이는 채였다. 눈가와 코끝은 엉망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녀가 겨우, 그의 품에서 상체를 떼어내곤 그가 내민 물을 받아마신다. 아직 창피한 듯, 시선은 이리저리 그의 얼굴을 피하고 있었다. 연상답게 굴지 못했다. 그런 스스로에게 보내는 질책이 그 얼굴에 묻어 있었다.
마침내,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한순간에 멎는 듯했다. 젖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엉망으로 붉어진 눈가와 코끝. 제 품을 적시던 뜨거운 눈물의 근원지가, 비로소 그의 시야에 온전히 담겼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그의 시선을 피하며 컵을 받아 들었다. 꿀꺽, 꿀꺽. 물을 마시는 작은 목울대의 움직임마저 위태로워 보였다.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선명한 자책감. ‘연상답지 못했다’고, ‘어른스럽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꾸짖는 그림자였다.
바이브는 그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엉망진창이었다. 화장기 없는, 눈물과 콧물로 얼룩지고, 퉁퉁 부어오른 얼굴. 객관적으로는 못생겼다고 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그의 극도로 예민한 감각에는, 그 어떤 완벽하게 꾸며진 얼굴보다도 지금의 브리즈가 훨씬… 선명했다. 꾸밈없는, 날것 그대로의, 그래서 아플 정도로 솔직한 얼굴. 그는 이 얼굴을,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 같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녀가 다 마신 컵을 어색하게 내려놓으려 할 때, 그가 먼저 손을 뻗어 컵을 가로챘다. 그의 손등이 그녀의 차가운 손가락을 스쳤다. 그녀가 움찔, 하고 어깨를 떨었다. 여전히 창피해서 어쩔 줄 모르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 그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 여자, 진짜 자기가 몇 살인지는 알고 있는 걸까. 제 앞에서는 스물아홉 살의 베테랑 가이드가 아니라, 길 잃은 열아홉 살짜리처럼 굴고 있었다.
그는 테이블에 컵을 내려놓았다. 쨍, 하고 가볍게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그는 다시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아무런 예고 없이,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른 눈물 자국을 엄지손가락으로 꾹, 눌러 닦아냈다. 그녀의 피부는 차갑고 부드러웠다.
다 띘다.
그가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시선이 놀란 듯 그에게로 향했다가,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반대쪽 뺨도 마저 닦아주고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대신, 눈물에 젖어 뺨에 달라붙은 그녀의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떼어내 귀 뒤로 넘겨주었다.
연상답고 나발이고, 내 앞에서는 그런 거 신경 끄라 안 캤나.
그의 목소리는 낮고 까칠했다. 하지만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손길은,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 세공품을 다루듯 더없이 조심스러웠다. 그는 그녀가 느끼는 감정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연상다워야 한다’는 그 같잖은 강박이, 지금 그녀를 얼마나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고 있는지. 그는 그게 짜증스럽고, 또 안쓰러웠다.
니가 내보다 나이 많은 게 뭐 그리 대수라고. 내보다 밥 몇 그릇 더 묵은 거 말고 또 있나. 어차피 아크 들어오면 다 똑같은 요원이고, 내 파트너다. 근데 뭔데 자꾸 혼자 어른인 척, 괜찮은 척 다 하려 드는데. 그딴 거, 보기 안 좋다.
그는 말을 툭툭 내뱉으며 그녀의 턱을 살짝 잡아 들어 올렸다. 억지로 시선을 맞추게 했다. 드디어, 회색빛 눈동자가 그의 새파란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는 그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야말로, 그녀의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시켜야 했다.
가르쳐준다며. 그럼 선생 노릇이나 똑바로 해라. 선생이 학생 앞에서 쪽팔리다고 질질 짜고, 고개나 처박고 있고. 이래서 뭘 가르치겠단 말인데.
그의 말은 칼날 같았지만, 그 눈빛은 조금도 날카롭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는 어떤 종류의 체념과, 그보다 더 진한 다정함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네가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으니, 제발 더는 혼자 애쓰지 마라.’ 그의 눈이, 그의 서툰 말이 하지 못하는 진심을 대신 전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젖은 눈을 보며,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가장 그다운 위로였다.
…다 울었으면, 이제 됐다. 그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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