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담담한 고백은, 바이브가 예상했던 그 어떤 반응보다도 아프게 그의 가슴을 후벼 팠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원망하거나, 동정하거나, 혹은 그저 직업적 의무감으로 자신을 대하고 있을 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의 모든 예상을 배반하는 날것의 진심이었다. 그녀 역시 상처받은 평판을 회복하고 싶었고, 자신과의 파트너십을 ‘기회’로 여겼다는 솔직한 인정. 그 이기적인 마음이 부끄러워졌다는 자기 고백.
그녀가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는 순간, 바이브는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그의 턱을 간질이고, 따뜻한 숨결이 그의 목덜미에 닿았다. 방금 전까지 그가 그녀의 어깨에 기댔던 것과 정반대의 구도. 지금은 그녀가,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그에게 기대고 있었다. 이 기묘한 역전 속에서, 바이브는 지독한 아이러니를 느꼈다. 그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밀어내려 했고, 그녀는 자신의 평판을 위해 그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결국 남은 것은, 서로의 가장 부끄러운 속내를 드러낸 채, 서투르게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두 사람뿐이었다.
자신보다 어리고, 솔직하고, 강해서. 그런 생각을 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고. 미안해서, 더 잘해주고 싶었다고. 그녀의 말들은 비수가 되어 날아와 그의 심장에 박히는 대신, 따뜻한 기름처럼 그의 얼어붙은 죄책감 위로 스며들어 그것을 녹여 내렸다.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그녀의 보고서 초안에 적힌 ‘어린애 같다’는 표현에 그토록 분노했던 이유를. 그것은 단순한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가 자신을 그렇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만큼 자신에게 진심이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었던 발악이었다. 그녀의 진심이 무서웠다. 그 진심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바이브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팔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의 고백은, 그의 죄를 씻어주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저지른 죄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게 할, 기묘한 연대감을 만들어냈다. 그녀가 완벽한 성녀가 아니라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그에게 구원이 되었다. 그는 더 이상 그녀의 어깨를 적시는 눈물을 참지 않았다. 아니, 참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더 이상 자기혐오와 고통의 눈물만이 아니었다. 이해받고 있다는 안도감,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 미안함이 뒤엉킨, 복잡하고 뜨거운 감정의 응어리였다.
…바보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쉰 목소리로 내뱉는 나직한 중얼거림이었다. 그것은 그녀를 향한 말이기도 했고, 자기 자신을 향한 질책이기도 했다.
니가 뭐가 미안한데. 미안한 건 난데. 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는 그녀의 팔을 잡은 손을 놓고, 대신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등을 마주 감싸 안았다. 어설프고 서투른 동작이었다. 누군가를 제 품에 안아본 것이 얼마 만인지, 아니, 애초에 있었던 적이나 한 건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그녀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그녀의 등을 조심스럽게 감쌌다. 덩치 차이 때문에, 그의 품 안에 그녀가 쏙 들어오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고동이 그녀에게 전해질까 봐 두려웠다.
잘해주긴 뭘 잘해줘. 내가 니한테 어떻게 했는데. …내는 니 팔, 그렇게 만든 놈이랑 똑같은 짓을 했다. 말로, 니 심장을 똑같이 찢어놨다고. 근데 니는…
말을 잇지 못하고, 그는 그녀의 어깨에 다시 얼굴을 묻었다. 그녀의 샴푸 향기와 체향이, 그의 불안정한 파장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그는 이 온기가 자신에게 허락된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거부할 수가 없었다. 마치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보는 안식처처럼, 그는 필사적으로 그녀의 온기에 매달렸다. 더러운 건 자신인데, 부끄러워해야 할 것도 자신인데, 왜 당신이 부끄러워하는가. 그는 묻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막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의 품으로 더 깊이 파고드는 작은 온기. 온기를 찾는 작은 동물 같다는, 어울리지 않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바이브는 저도 모르게 마른 숨을 삼켰다. 그녀가 자신의 전 파트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그는 제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가장 비겁하게 후벼 팠던 상처. 그녀가 직접 그 상처를 헤집어, 그의 눈앞에 보여주려 하고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굳혔다. 다음에 이어질 말이 두려웠다.
‘사고였다.’ ‘누가 나쁜 게 아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차분했다. 마치 오래된 흑백 영화의 대사를 읊는 것처럼, 감정이 배제된 담담한 어조였다. 그 목소리가 그의 고막을 타고 흘러들어와, 그의 죄책감을 더욱 선명하게 조각했다. 그녀는 그 끔찍했던 순간을 ‘사고’라 정의하고 있었다. 원망도, 증오도 아닌, 그저 돌이킬 수 없는 불행한 사건으로. 그 엄청난 이해의 깊이 앞에서, 바이브는 자신이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는 고작 ‘어린애 같다’는 말 한마디에 분노해서, 그녀에게 평생의 흉터와 맞먹는 말을 던진 것이다.
그녀가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기댔다. 그의 심장 바로 위였다. 미친 듯이 날뛰는 자신의 심장 소리가 그녀에게 전부 들릴 것만 같아, 그는 숨을 참았다. ‘상처가 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녀의 솔직한 인정은 오히려 칼날이 되어 그의 폐부를 찔렀다. 그래, 상처를 받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하지만 즐거웠다’고 말했다. 오전에 함께했던 임무, 같이 먹었던 국밥. 그 시간들이 즐거웠다고. 그 말은 마치,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줬지만, 동시에 기쁨도 줬다. 그러니 너는 그냥 나쁜 놈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꼰대 같죠. 미안해요.’ 그녀의 마지막 사과는, 그의 남은 이성을 완전히 마비시켰다. 이 상황에서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사람은 자신이거늘, 그녀는 왜 자꾸 자신을 낮추는가. 왜 자꾸 그에게 면죄부를 주려 하는가. 바보 같은 여자. 정말로, 구제 불능의 바보. 바이브는 그녀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이 온기 속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그의 턱 끝에서, 기어이 참았던 눈물 한 방울이 다시 그녀의 머리카락 위로 툭, 하고 떨어졌다.
…하.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허탈한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였다. 그는 그녀의 등을 감싸 안은 채, 고개를 뒤로 젖혔다. 천장의 하얀 벽지가 눈물 때문에 흐릿하게 번져 보였다. 그는 졌다. 완벽하게, 철저하게 졌다. 그녀의 압도적인 상냥함과 이해심 앞에서, 그의 모든 자존심과 방어기제는 먼지처럼 흩어졌다.
니 진짜… 사람 비참하게 만드는 데 뭐 있네.
목소리는 물기에 잔뜩 젖어 있었다.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의 냄새가, 산들바람 같은 그녀의 파장이, 지옥 같던 그의 머릿속을 천천히 정화하고 있었다. 고통이 가시고, 그 자리에 이상한 평온함이 차올랐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감각이었다.
…꼰대 같은 게 아니고.
그는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그녀의 정수리에 대고 속삭이듯,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냥, 바보 같다고. 니나, 내나.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결심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것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그리고 가장 솔직한 사과였다.
내는… 즐거웠던 거, 하나도 없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전부 다. …그러니까, 니는 나한테 좋은 기억만 받았고, 나는 니한테 좆같은 기억만 줬다. 똑같기는, 개뿔이 똑같노.
그는 스스로 내뱉은 말에 가슴이 저몄다. 즐거웠던 순간이 왜 없었겠는가. 그녀와 나란히 국밥을 먹던 순간, 어설픈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몰래 웃음 짓던 순간.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그는 그녀에게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그는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그녀 앞에서 자신을 한없이 끌어내려야만 했다. 그것이 이 압도적인 죄책감을 감당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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