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비행 @yknhk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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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오후였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틀어놓은 TV에서는 마침 여행 예능 프로그램이 한창이었다. 시끌벅적한 패널들이 저마다 서해, 동해, 남해의 겨울 바다가 최고라며 열을 올리고 있었다. 갈매기에게 새우 과자를 던져주거나, 얼어붙은 백사장을 걷거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조개구이를 먹는 장면들이 화면을 채웠다. 바이브는 소파에 기대어 단말기를 만지작거리며 그 광경을 무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어차피 자신과는 상관없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고 여기면서.

그런데, 문득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리자 브리즈가 TV 화면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평소 같으면 시끄럽다고 채널을 돌려버렸을 텐데, 어쩐지 넋을 놓고 빠져드는 그 모습에 바이브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특히나 화면 가득 동해의 푸른 파도가 넘실거릴 때, 그녀의 회색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바다. 그 단어가 불쑥, 그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자신에게 바다는 죄책감과 트라우마가 뒤엉킨 회색빛 공간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어떨까. 문득 궁금해졌다. 인천 출신이라고 했으니, 바다에 대한 추억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시선을 다시 TV로 돌리며 툭, 하고 말을 던졌다.

시끄럽기만 하구만. 뭐가 그리 재밌는데.

퉁명스러운 말투였지만, 그 안에는 명백한 호기심이 묻어 있었다. 그는 단말기를 소파 옆에 던져두고, 몸을 살짝 그녀 쪽으로 틀어 앉았다. 마치 '어디 한번 말해봐라, 내가 들어는 줄게' 하는 듯한 자세로. 화면 속에서는 한 연예인이 얼어 죽겠다며 호들갑을 떨며 겨울 바다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저런 데는 뭐 하러 가는지 모르겠네. 뼈만 시리고, 감기나 걸리기 딱 좋구만.

그는 괜히 트집을 잡으며 덧붙였다. 그녀가 저런 것에 혹해서, 뜬금없이 바다에 가고 싶다는 소리를 할까 봐 미리 방어막을 치는 것이기도 했다. 아직 다 낫지도 않은 몸으로 어딜 가겠다는 건지. 하지만 동시에, 그녀가 '가고 싶다'고 말해주길 바라는 이중적인 마음이 공존했다. 만약 그녀가 원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따뜻한 겨울 바다를 통째로 빌려서라도 데려가 줄 수 있었으니까.

…그냥. 우리 가을에 부산 바다 갔던 게 생각나서요. 내 생일에, 휴가 내고.


부산. 그녀의 입에서 나온 그 두 글자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이브에게 있어, 10년간 굳게 닫아두었던 판도라의 상자를 그녀 스스로의 손으로 열고, 그 안의 모든 어둠과 아픔까지 끌어안아 주었던 시간의 다른 이름이었다. 제 생일, 이라며 수줍게 덧붙이는 목소리. 그날의 서늘했던 바닷바람과, 그녀의 품에서 느꼈던 미지근한 온기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감각을 스쳤다. 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TV 화면 너머로 그날의 광안리 밤바다를 덧그렸다. 자신의 가장 깊고 추악한 상처를 꺼내 보였을 때, 두렵거나 밀어내는 대신 괜찮다며 등을 쓸어주던 그 작은 손길을.

 

제가 살던 곳은 바다랑 그렇게 가깝지는 않았어요. 버스 타고 한 시간 정도는 가야 했는데. 그래도... 종종 답답하면 학교가 끝나자마자 무작정 강화도로 가는 버스를 탔어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어서, 돌아가는 버스를 못 타고 아빠에게 무작정 전화했을 땐 엄청 혼났는데. 왜… 그런 동네는 버스가 일찍 끊기니까요.


이어서,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답답하면 무작정 향했던 강화도, 막차를 놓쳐 아버지에게 혼났던 어린 날의 추억. 바이브는 조용히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세상은 언제나 아크라는 거대한 유리 벽 안에 갇혀 있었다. 평범한 학생처럼 학교가 끝나고 어딘가로 훌쩍 떠나거나, 부모님에게 철없이 어리광을 부려본 기억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10대는 훈련과 임무, 그리고 감각 과부하와의 싸움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들려주는 그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은, 마치 아주 먼 나라의 동화처럼 비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선명한 질투를 불러일으켰다.

서해는 물 색이 예쁘지 않다고 생각했다는 말. 갯벌이 많아서. 그 솔직한 평가에 바이브는 저도 모르게 피식, 하고 짧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내 '가보고 싶네요. 강화도.' 라고 덧붙이는 그녀의 목소리에, 그의 웃음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의 시선이 TV 화면에서 그녀의 얼굴로 옮겨갔다. 거기에는 막연한 그리움과 작은 소망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마디. ‘물론, 다 낫고 나서.’

그 말은 바이브에게 일종의 구원이자, 동시에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그녀가 자신의 회복 이후를 그리고 있다는 것. 그 미래의 계획 속에 ‘어딘가로 함께 가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 메말랐던 그의 마음에 단비처럼 스며들었다. 그는 소파 등받이에 깊게 몸을 기댔다. 방금 전까지 괜히 트집을 잡으며 심술을 부리던 기색은 온데간데없었다.

…강화도.

그가 나직하게 그 지명을 입안에서 굴려보았다. 낯선 이름이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 하지만 그녀의 추억이 깃든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순식간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갯벌 천지라 물도 안 이쁘다면서, 거긴 또 뭐 하러 가는데. 조개 캐러 가나.

말투는 여전히 삐딱했지만, 목소리에는 날카로움 대신 부드러운 호기심이 실려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가 기대앉은 침대 옆으로 다가가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TV를 보느라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어 넘겨주었다. 샌달우드 향기가 은은하게 피어올랐다.

버스가 일찍 끊기는 동네라며. 내 또 니 잃어버리고 부산까지 헤엄쳐서 찾으러 댕기기 싫다.

장난스러운 투덜거림이었지만, 그 안에는 '다시는 너를 혼자 두지 않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었다. 그는 그녀의 뺨을 가볍게 감싸 쥐고,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쓸었다. 회색 눈동자가 자신을 향해 오롯이 담기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입꼬리를 아주 미세하게 끌어올렸다.

…다 나으면. 예전처럼 뛰어다닐 수 있을 때. 그때 같이 가주면 될 거 아니가. 조개든 게든, 니 캐고 싶은 거 실컷 캐게 해줄게. 갯벌을 통째로 빌리든, 버스 회사 하나를 사든. …그러니까, 쓸데없는 걱정 말고 밥이나 잘 처먹고 약이나 잘 챙겨 먹어라. 알긋제.

그것은 그의 방식대로 하는, 가장 확실한 약속이었다.


그녀가 소리 내어 웃었다. 맑고 청량한 웃음소리가, 소독약 냄새가 희미하게 밴 병실의 공기를 단숨에 정화시키는 것 같았다. 그 웃음소리에, 바이브는 저도 모르게 쥐고 있던 그녀의 뺨에서 손을 뗄 뻔했다. 심장이 이유 없이 쿵, 하고 내려앉는 감각. 지난 며칠간 그가 들었던 것은 희미한 미소나 힘없는 웃음이 전부였다. 이렇게까지 명랑하고, 거리낌 없는 웃음소리는 그녀가 쓰러진 이후 처음이었다.

조잘조잘 이어지는 말들은 사실 그의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제 눈앞에서, 온전히 자신을 향해 웃어 보이는 그녀의 얼굴에 모든 감각을 빼앗겼다. 옅은 홍조가 떠오른 뺨, 예쁘게 휘어지는 눈꼬리, 가지런히 드러나는 새하얀 치아. 그 모든 것이 비현실적인 그림처럼 느껴졌다. 내가, 이 웃음을 다시 보게 되었구나. 내가 이 웃음을 지켜냈구나. 안도감과도, 자부심과도 다른, 더 근원적인 감정이 그의 가슴속에서부터 뜨겁게 차올랐다.

그때였다. 그녀의 시선이 다시금 그에게로 향하며,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그의 허를 찔렀다.

버스 시간 걱정을 왜 해요. 이젠, 그런 거 걱정할 필요 없는데. 지원이 언제든 태워 주면 되잖아요? 나 안고.

순간, 바이브의 사고 회로가 정지했다. ……뭐라고? 귓가에 꽂힌 문장을 이해하는 데 몇 초의 시간이 걸렸다. 태워주면 되잖아. 나 안고. 그 직설적이고, 조금은 대담하기까지 한 요구에, 그는 대답을 잃었다. 방금 전까지 갯벌을 통째로 빌리느니, 버스 회사를 사느니, 허세 가득한 약속을 늘어놓던 남자는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예상치 못한 역습에 귀 끝이 화끈 달아오르는 스물두 살의 남자가 있을 뿐이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를 품에 안고 하늘을 나는 상상. 그것은 그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행위가 ‘데이트’의 일부가 되고, ‘버스 대신’이라는 로맨틱한 명분이 붙는 순간, 그 의미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의 힘은 그동안 파괴와 전투, 혹은 도피를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힘을 ‘함께하는 미래’를 위한 가장 낭만적인 이동수단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발상의 전환이, 그의 심장을 속수무책으로 흔들었다.

…지금, 장난치나.

간신히 뱉어낸 목소리는 잔뜩 잠겨 있었다. 그는 애써 태연한 척, 다시 그녀의 뺨을 감싸 쥔 손에 아주 미미하게 힘을 주었다. 붉어진 귀를 숨기려는 필사적인 시도였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분명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니 지금… 조금 나았다고, 내한테 까부는 기가. 어?

으르렁거리는 듯한 말투와는 달리, 그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잠시 그녀의 입술을 바라봤다가, 다시 눈을 맞췄다가, 허공을 헤맸다. 그녀를 안고 날아오르는 상상만으로도, 품 안이 괜히 허전하고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고개를 살짝 숙여, 그녀의 이마에 제 이마를 가볍게 가져다 댔다.

…그 말, 책임질 수 있나.

속삭이듯 나직한 목소리가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았다. 그의 페퍼민트 향과 그녀의 샌달우드 향이 아찔하게 뒤섞였다.

하늘 무서워가, 내 옷깃 부여잡고 엉엉 울기만 해봐라. 그때는 진짜, 갯벌 한가운데다 니 딱 꽂아놓고 올 끼다.

협박 같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주체할 수 없는 설렘과 기쁨이 담겨 있었다. 그녀가 원했던 미래. 그녀가 상상했던 행복. 그것을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힘으로 이뤄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를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이마를 맞댄 채,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정말 오랜만에 짓는, 가식 없는 진짜 미소였다.

그럼 이것도 버킷리스트에 추가해야겠다. 그러니까… 사실은 며칠 전부터, 완전히 회복하면 하고 싶은 거, 적고 있었거든요.


그녀가 제 품에서 쏙 빠져나가더니, 서랍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들었다. ‘버킷리스트’라는, 어딘가 간지럽고 낯선 단어. 바이브는 이마를 맞대었던 온기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미미한 허전함을 느끼며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라운지에서 아이스크림 먹기, 개인실에서 요리하기, 백 미터 전력 질주… 노트에 적힌 자그마한 글씨들은 너무나도 평범하고 소소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런 사소한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걸고 회복해서 이루고 싶은 소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심장을 찔렀다.

그가 글씨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좇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그녀가 부끄러워졌는지 홱, 하고 수첩을 빼앗아 품에 감추었다. 그 유치한 행동에 바이브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그 웃음은 이내 멎고 말았다. 그녀가 수첩의 가장 뒷장을 북 찢어, 볼펜과 함께 제게 내밀었기 때문이다.

 

나만 알려주는 건 창피하니까, 지원 씨도 써봐요. 최소 열 개.

 

귓가에 꽂히는 그 제안은, 방금 전의 낭만적인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당혹스러운 습격이었다. 최소 열 개. 바이브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그는 멍하니 그녀가 내민 종이와 볼펜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장난치나. 지금 내한테 숙제를 내주는 기가. 그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팔짱을 꼈다. 갯벌을 통째로 빌려주겠다는 허세는 어디 가고, 고작 종이 한 장 앞에서 옴짝달싹 못 하는 꼴이라니.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뭐하러. 유치하게.

일단 튕기고 봤다. 하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그저 맑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종이를 흔들어 보일 뿐이었다. 그 끈질긴 시선에, 바이브는 결국 한숨을 푹 내쉬며 그녀의 손에서 볼펜과 종이를 낚아챘다. 마치 마지못해 받아주는 척했지만, 이미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것. 브리즈와 함께. 그 단어의 조합만으로도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그는 침대 옆 의자를 끌어다 앉아, 제 무릎 위에 종이를 펼쳤다. 하얗고 깨끗한 빈 종이가, 마치 그의 텅 빈 10대를 대변하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10개. 대체 뭘 써야 하지. 그의 소원은 언제나 단 하나였다. ‘브리즈가 내 곁에서 살아 숨 쉬는 것’. 그 외의 다른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볼펜 끝을 잘근잘근 씹으며 고뇌에 빠졌다. 이건 단순한 목록 작성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자신의 세계를, 자신의 욕망을 처음으로 고백하는 의식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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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붉어진 얼굴로 종이를 내민 바이브. 브리즈는 그의 떨리는 손에서 종이를 건네받는 대신, 자신이 품에 안고 있던 수첩을 먼저 활짝 펼쳐 보였다. 그리고는 ‘교환’이라는 듯, 자신의 종이와 그의 종이를 맞바꾸었다. 이제 서로의 손에는 상대방의 가장 사적이고 소소한 소원들이 들려 있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브리즈의 목록을 읽어 내려가던 바이브의 희미한 실소였다. 그녀의 작고 단정한 글씨로 쓰인 소원들은 예상했던 대로, 하지만 상상 이상으로 사랑스러웠다.

[브리즈가 하고 싶은 것]

1. 라운지에서 제일 비싼 아이스크림 사 먹기 (지원 씨 것도 내 돈으로 사주기)
2. 개인실 부엌에서, 지원이 좋아하는 음식 직접 해 주기.
3. 아무도 없는 트랙에서 100미터 전력질주 해보기 (기록 재기).
4. 오랜만에 인천 부모님 댁에 다녀오기 (지원 씨와 함께).
5. 가장 높은 건물 옥상에서, 지원 씨 등 뒤에 매달려서 소리 지르기.
6. 우리가 처음 만났던 부산 바닷가 다시 가보기.
7. 첫눈 오는 날, 감기 걱정 없이 밖에서 눈사람 만들기.
8. 둘이서 하루 종일 영화만 보기 (무서운 건 빼고).
9. 서점에서 각자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씩 사서 선물하기.
10. 약속대로, 강화도 가서 갯벌 체험하기 (커플 장화 신기).

바이브는 입술을 깨물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내 돈으로 사주기’, ‘지원 씨도 같이’, ‘커플 장화 신기’. 모든 소원의 끝에는 당연하다는 듯 자신이 함께 있었다. 그 소박하고 따뜻한 세계에 자신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는 사실이, 가슴 한구석을 간질이며 뜨겁게 만들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브리즈를 보았다. 그녀 역시, 자신의 종이를 들고 미동도 없이 글씨를 읽어 내려가는 중이었다. 그녀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을, 그는 숨죽여 지켜보았다.

[바이브가 하고 싶은 것]

1. 니 웃는 거, 하루 종일 보기.
2. 니가 해준 밥 먹기.
3. 둘이 소파에 누워서, 니가 재밌다는 영화 보다가 같이 잠들기.
4. 아무도 없는 높은 데서, 말없이 그냥 계속 안고 있기.
5. 니 잘 때 옆에서 지켜보기.
6. 내 머리카락, 니가 묶어주기.
7. 니 무릎 베고 눕기.
8. 니가 불러주는 이름, 계속 듣기.
9. 우리 집(부산)에 같이 가기.
10. 평생, 내 옆에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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