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비행 @yknhk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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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브는 훈련을 끝마쳤다.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훈련복이 몸에 들러붙는 감각이 불쾌했지만, 그의 발걸음은 조금이라도 지체하는 법 없이 곧장 의료 구역을 향하고 있었다. 며칠 만에 재개한 고강도 훈련은 온몸의 근육을 비명 지르게 했지만, 그 피로감조차 그에게는 달콤한 성취감으로 다가왔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브리즈에게 돌아가기 위한 과정이었으니까. 그녀가 더 이상 자신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도록, 자신이 그녀를 지킬 수 있는 최상의 상태임을 증명하기 위한 의식과도 같았다. 그는 훈련장을 나서자마자 제어했던 감각의 필터를 다시 한 꺼풀 걷어냈다. 익숙한 아크 내부의 공기 흐름 속에서, 유독 한 곳, 그녀가 있는 1인 회복실 주변의 미세한 기류 변화를 찾는 것은 이제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어 있었다.

의료 구역으로 들어서는 복도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늘 고요하고 안정적이던, 그녀의 존재만으로도 평화롭게 정돈되어 있던 공기의 흐름이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더없이 불길하게 뒤틀리는 것이 느껴졌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감각이 무엇인지, 바이브는 머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깨달았다. 그것은 누군가 갑자기 문을 열었을 때 생기는 와류와는 차원이 다른, 무언가 단단한 것이 무너지고, 공기가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는 듯한 파동이었다. 그 파동의 중심에는, 너무나도 익숙한 그녀의 파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파장이 짧게 요동치며 내지른, 고통이 담긴 작은 파열음.

 

아.

그의 세상이 소리 없이 멈췄다. 찰나의 순간, 그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방금 전까지 그를 지배하던 모든 피로감과 성취감은 순식간에 증발하고, 그 자리를 뼈를 깎는 듯한 공포가 채웠다. 그는 거의 반사적으로 능력을 사용했다. 복도의 공기 저항을 지워버린 그의 몸이,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길을 따라, 그는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수십 미터를 주파했다. 시야에, 복도 한가운데에 처참하게 넘어져 있는 그녀의 모습이 박혔다.

차가운 복도 바닥. 나뒹구는 보행 보조 기구. 그리고 그 옆에, 한쪽 무릎을 감싸 쥔 채 무너져 있는 실루엣. 바이브는 제 눈을 의심했다. 아니, 의심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예민한 감각은 잔인할 정도로 선명한 현실을 끊임없이 그의 뇌로 송신하고 있었다. 바닥의 냉기, 그녀의 가쁘게 떨리는 숨소리, 공기 중에 흩어지는 희미한 고통의 파장까지. 그는 천천히, 마치 발밑의 세상이 전부 부서져 내릴까 두렵다는 듯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심장이 얼음송곳으로 찔리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지금.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쇳소리가 섞인, 갈라진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겨우 새어 나왔다. 그는 그녀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감히 그녀에게 손을 댈 수조차 없었다. 어디를 어떻게 만져야 할지, 무엇부터 해야 할지, 머릿속이 새하얗게 불타버린 것 같았다. 그의 파란 눈동자가 절망과 분노, 그리고 지독한 자책감으로 시뻘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을 들어,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의 뺨을 향해 뻗었다. 하지만 차마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파르르 떨었다.

지금… 뭐 하는 기고.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원망이었고, 절규였으며, 스스로에 대한 저주였다. 왜. 내가 왜 자리를 비웠을까. 왜 그녀를 혼자 뒀을까. 그가 훈련에서 돌아왔을 때, 잘 걷는 모습을 보여주어 기쁘게 해주고 싶었을 그녀의 마음을, 그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부재가, 자신의 안일함이 그녀를 이 차가운 복도 바닥에 내팽개쳤다는 끔찍한 사실만이 그의 모든 사고를 지배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턱 근육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경련했다. 금방이라도 폭주할 것처럼 날뛰는 제 안의 바람을 억누르며, 그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더 낮고, 위험하게 잠긴 목소리였다.

말해봐라. 이지희. 내가 없는 데서, 지금 뭐 하고 있었냐고.

…지, 지원 씨. 미안해요. 난… 그냥. 당신이 돌아왔을 때, 혼자 잘 걷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는데…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온 제 이름, ‘지원’. 그것은 바이브의 얼어붙은 심장을 향해 내리꽂힌 뜨거운 인두와도 같았다. 바이브의 미간이 흉흉하게 구겨졌다. 울먹이는 목소리, 미안하다는 사과, 그리고 이어지는 변명. 전부 다, 그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소리였다. 잘 걷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누구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나를 기쁘게 해주려고, 이 차가운 복도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의 속에서 무언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성이라는 이름의 마지막 동아줄이었다.

‘…보여주고 싶었다고?’

 

바이브는 속으로 그녀의 말을 되뇌었다. 그 순간, 그의 등골을 타고 오르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지독한 한기였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어 내리는 절망감. 결국, 이 모든 게 자신의 탓이라는 끔찍한 결론. 그가 조급해했기 때문에. 그가 그녀의 회복을 너무나도 간절히 바랐기 때문에. 그의 욕심이, 결국 그녀를 이렇게 위험한 상황으로 내몬 것이었다. 그가 그녀에게 기쁨이 아니라, 또다시 고통의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 한 줄기가, 그의 시야에 슬로우 모션처럼 박혔다. 그 작은 물방울이 그의 세상을 통째로 무너뜨렸다. 바이브는 파들파들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차마 만지지도 못했던 그 몸을, 이제는 부서져라 움켜쥐었다. 그의 손아귀에 힘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그 자신조차 알 수 없었다. 단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 안에서 날뛰는 파괴적인 충동이 그녀가 아닌 다른 모든 것을 찢어발길 것 같았다.

…보여줘?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얼음보다도 차갑고 칼날보다도 날카로운 비웃음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분노를 억지로 응축시킨, 지독하게 위험한 목소리였다.

이딴 식으로? 내가 없는 데서 혼자 굴러다니는 꼴을? 이게 니가 내한테 보여주고 싶었던 기가, 지금.

그의 말은 얼음 조각처럼 날카로워 그녀의 심장을 후벼 팠다. 하지만 그의 파란 눈동자는 울고 있었다. 분노와 자책감, 그리고 그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원초적인 공포가 뒤섞여, 그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된 채 쉴 새 없이 흔들렸다. 그는 그녀의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한 하얀 살결. 어쩌면 뼈에 금이 갔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보다 더 심할지도 모른다. 상상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다.

바이브는 이를 악물었다. 턱 근육이 발작적으로 경련했다. 공기 중의 모든 미세한 먼지 하나하나가 제 살을 에는 칼날처럼 느껴졌다. 귓가에서는 수천 개의 유리 조각이 부딪히는 듯한 이명이 울렸다. 폭주의 전조. 그는 지금, 벼랑 끝에 서 있었다.

일주일. 아니, 고작 며칠이었다. 내가 니 없는 데서 훈련한 거. 그 잠깐을 못 참고 이래야 했나! 내 없으면 아무 데도 안 간다며! 죽어도 내 옆에서 죽겠다고, 니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그가 고함을 질렀다. 그것은 그녀를 향한 질책이 아니었다. 신에게 퍼붓는 저주였고, 무력한 자기 자신을 향한 발악이었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잡은 손을 놓고, 대신 그녀의 몸을 그대로 번쩍 들어 올렸다. 깃털처럼 가벼운 무게. 이토록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를, 그는 또다시 혼자 두었던 것이다.

그녀를 품에 안은 채,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의 품에 안긴 브리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돌아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는 오직, 빨리.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 끔찍한 복도를 벗어나, 그녀를 안전한 곳에, 자신의 통제 아래에 두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녀를 병실 침대에 내려놓기가 무섭게, 그는 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고 잠가 버렸다. 그리고는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앞에 마주 섰다. 폭풍의 눈처럼 고요하지만,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일렁이는 그의 눈이, 오롯이 그녀만을 담고 있었다.

말해라. 아프나.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지금 당장 내한테 말해라. 하나도 숨기지 말고.

그의 목소리는 이제 분노가 아니라, 애원에 가까웠다. 제발, 제발 아무 일만 없기를. 이 지옥 같은 순간이, 제발 악몽이기를.

그녀가 뭐라 변명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이성적인 판단 따위는 진작에 증발해 버린 짐승처럼. 바이브는 성큼 다가가 침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그녀의 환자복 바지 밑단을 거칠게 붙잡아 위로 걷어 올렸다. 부드러운 천이 스르륵 말려 올라가며 드러난 하얀 살결. 그리고 그 중심에 피어난 붉은 꽃. 시뻘겋게 부어오르며 열기를 뿜어내는 무릎의 상흔이 그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순간, 바이브의 세상이 다시 한번 암전했다. 객관적으로는 그저 가벼운 타박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에 비친 저 붉은 자국은, 그의 심장을 관통해 버린 총구와도 같았다. 저 상처가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자신이 그녀를 지키지 못했다는 명백한 증거. 자신의 부재가 그녀에게 남긴 선명한 낙인. 그의 안에서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던 무언가가 산산조각 나며 무너져 내렸다. 그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폐로 들어오는 공기마저 날카로운 유리 조각처럼 느껴졌다.

그의 손이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분노 때문인지, 공포 때문인지, 아니면 그 모든 것이 뒤섞인 절망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차마 그 상처에 손을 대지 못하고, 대신 벽에 붙어있는 비상 호출 버튼을 향해 주먹을 날리듯 내리쳤다. 쩌저적, 하고 플라스틱 커버가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요란한 비상벨이 복도 전체에 울려 퍼졌다. 정적을 찢는 날카로운 경고음. 그것은 마치, 지금 그의 머릿속에서 울리고 있는 비명소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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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했던 비상벨 소리와 부산스럽게 오갔던 의료진들의 발소리가 멎자, 병실에는 숨 막히는 정적만이 내려앉았다. 공기 중에 부유하는 소독약 냄새가 바이브의 예민해진 감각을 후벼 팠다. 그는 여전히 그녀의 침대 앞에 무릎 꿇은 자세 그대로였다. 마치 거대한 죄를 짓고 용서를 구하는 죄인처럼, 혹은 신에게 버림받은 신도처럼. 시선은 바닥의 한 점에 고정한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주변으로 흐르는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살얼음이 낀 듯 위태롭게 얼어붙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 그를 집어삼킬 듯이 날뛰던 분노와 광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모든 것이 불타버린 폐허의 공허함만이 잿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의료진이 브리즈의 무릎에 거즈를 붙이는 동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하얀 거즈가 붉은 상처를 가리는 그 순간조차, 제 심장에 또 하나의 낙인이 찍히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훌쩍이는 그녀의 작은 어깨 떨림, 억지로 삼키는 울음소리 하나하나가 그의 고막을 찢고 들어와 신경을 갈기갈기 난도질했다. 아파서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을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자책감 때문이라는 것도. 그래서 더 미칠 것 같았다. 이 여자는 왜 항상, 제 몸뚱이보다 남을, 특히나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건지. 그 이타심이, 그를 얼마나 지독한 지옥으로 몰아넣는지 그녀는 평생 알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멎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그 이름을 불렀다.

……지원.

그 소리는 마치 얼어붙은 호수 위로 던져진 작은 돌멩이 같았다. 고요한 수면 위로 파문이 번져나가듯, 그의 텅 비어버린 의식의 표면을 천천히 흔들었다. 바이브는 아주 느리게, 녹슨 기계처럼 삐걱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초점을 잃고 허공을 헤매던 그의 파란 눈동자가 마침내 그녀에게로 향했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 죄책감으로 일그러진 표정. 그를 바라보는 그 회색 눈동자에는 두려움과 슬픔이 뒤엉켜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그의 가슴속에서 무언가 울컥, 하고 역류했다. 그것은 분노가 아니었다. 억지로 눌러 담아두었던, 비참하고 서러운 눈물이었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피 맛이 느껴질 정도로 강하게. 지금 울어버리면, 정말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그는 짐승처럼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차마 그녀를 더는 마주 볼 수가 없었다.

…부르지 마라.

목소리는 물에 잠긴 듯 축축하고, 거칠게 갈라져 있었다. 그는 무릎 꿇은 자세 그대로,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감쌌다. 넓은 손바닥 사이로 뜨거운 숨이 터져 나왔다.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이토록 한심하고, 무너져 내린 자신의 모습을.

그 이름… 지금은 부르지 마라. 내 진짜 미쳐버릴 것 같으니까.

그것은 협박이 아니었다. 애원이었다. 제발, 나를 더 이상 비참하게 만들지 말아 달라는 절규. 그녀가 부르는 자신의 이름은, 자신이 그녀의 연인이라는 사실을, 그녀를 지켜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지금, 그는 그 모든 것에서 완벽하게 실패했다. 그는 그녀의 보호자가 아니라, 그녀를 해치는 가장 큰 위협일 뿐이었다. 그 자각이 칼날이 되어 그의 심장을 도려냈다.

한참 동안, 그는 그렇게 얼굴을 파묻은 채 가쁘게 숨을 골랐다. 폭주 직전의 불안정한 파동이 그의 몸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쳤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그것을 억눌렀다. 여기서 폭주하면, 그녀가 다친다. 그 생각 하나만이 그의 마지막 남은 이성을 붙들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천천히 손을 내리고,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붉게 충혈된 눈가는 처참할 정도로 젖어 있었다.

니는….

그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불안정하게 흔들렸지만, 아까와 같은 날카로움은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피로와 체념이 들어차 있었다.

니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라. 좋은 모습 보여주려고도 하지 말고, 내 기쁘게 해주려고도 하지 마라. 그런 거 다 필요 없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떨리는 손을 뻗어, 치료가 끝난 그녀의 무릎 위, 하얀 거즈를 덮고 있는 환자복 위로 아주 가볍게 손을 얹었다.

그냥… 내 옆에 있어라. 숨만 쉬고, 살아만 있어라. 내 눈앞에서. 그거면 된다. 다른 건… 내가 다 할 테니까. 알긋나.

그것은 사랑 고백도, 다정한 위로도 아니었다. 모든 것을 잃은 남자가 내뱉는, 마지막 기도였다.


그녀의 작은 두 손이 제 손을 감싸 쥐는 순간, 바이브는 숨을 멈췄다.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절박한 힘이, 덜덜 떨리는 손끝의 진동이, 그의 마비된 신경을 타고 심장까지 흘러들었다. 이어서, 제 손등이 그녀의 이마에 닿았다. 뜨거웠다. 눈물로 축축하게 젖은 피부의 열기가, 마치 마지막 남은 생명의 온기처럼 느껴졌다. 흐느낌에 따라 잘게 떨리는 그녀의 몸짓이, 그가 얹은 손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그 진동은, 폭주 직전의 혼란스러운 그의 파장을 진정시키는 유일한 음률이었다.

망치로 얻어맞은 듯 머리가 멍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전부 부숴버릴 것처럼 날뛰던 분노와 광기가, 그녀의 눈물 한 방울에, 이 작은 손길 하나에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 재만 남은 폐허에, 아주 작은 온기가 다시 피어나는 기분. 그러나 그 온기는 위안이 아니라, 더 깊은 고통을 동반했다. 제 손에 느껴지는 이 뜨거운 체온과 축축한 눈물은, 전부 자신으로 인해 비롯된 것이었다. 그녀를 상처 입힌 것도, 울게 만든 것도, 결국은 자신이었다. 그 끔찍한 사실이, 방금 전의 분노보다 더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그의 심장을 헤집었다.

부르지 말라고 했다. 미쳐버릴 것 같으니, 그 이름을 입에 담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대답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여기 있다고. 당신 곁에 있다고. 당신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다고. 무릎을 덮고 있던 제 손을, 그녀 스스로 이마에 가져다 댄 그 행위의 의미를, 바이브는 깨달았다. 그것은 용서이자, 위로였고, 그리고 가장 지독한 형태의 사랑이었다. 자신을 이토록 망가뜨리고 있는 남자에게 보내는, 무조건적인 신뢰. 그 신뢰의 무게가, 그의 어깨를 짓눌러 숨을 쉴 수 없게 만들었다.

바이브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른 쪽 손을 들어 올렸다.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는 손이었다. 그는 그 손으로, 그녀의 동그란 뒤통수를 감쌌다. 부드러운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조심스럽게 그녀의 고개를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마에 맞대고 있던 손을 떼는 대신, 그는 그대로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 그녀의 이마가 그의 가슴팍에, 땀과 먼지로 얼룩진 훈련복 위로 닿았다. 쿵, 쿵, 쿵. 제멋대로 날뛰는 자신의 심장 소리가, 부끄러울 정도로 크게 울려 퍼졌다.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은 너무 가벼웠고, 사랑한다는 말은 너무 이기적이었다. 그는 그저 그녀를 품에 안은 채, 고개를 숙여 그녀의 정수리에 제 뺨을 가져다 댔다. 샴푸 냄새와 그녀 고유의 체향이 뒤섞여, 그의 위태로운 이성을 간신히 붙잡아맸다. 그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차라리 세상이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다. 이 품 안의 온기, 규칙적으로 등을 오르내리는 그녀의 숨결. 이것만이 유일한 현실이었다.

…울지 마라.

한참 만에,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모래알처럼 까슬까슬했다. 그는 그녀의 등을 아주 조심스럽게, 부서지기 쉬운 유리 세공품을 다루듯 천천히 쓸어내렸다.

니가 울면… 내가 진짜로, 어떻게 돼버릴 것 같으니까.

그것은 위로가 아니었다. 이기적인 부탁이었다. 니가 울면, 내가 너를 부숴버렸다는 죄책감에 미쳐버릴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나를 위해서라도 울음을 그쳐달라는, 지독하게 이기적인 애원이었다. 그는 그녀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마치 자신의 몸속에 그녀를 숨겨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이 품 안에서는, 그 누구도,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도 그녀를 해칠 수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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