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 브리즈의 상태가 눈에 띄게 안정되자, 드디어 그녀의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던 산소마스크가 제거되었다. 바이브는 의료진이 마스크를 벗겨내는 내내, 숨조차 제대로 쉬지 않고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마치 제 목숨이 달린 선고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지난 며칠간 그는 한시도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간호사가 그녀의 몸을 닦아줄 때도, 의사가 회진을 돌 때도, 그는 그림자처럼 그녀의 침대 맡을 지켰다. 잠은 의자에 앉아 토끼잠을 자는 것이 전부였고, 식사는 부스터가 억지로 입에 넣어주는 영양죽 몇 숟갈이 다였다. 그의 세상은 이 사각형의 병실 안에서, 그녀의 숨소리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의 맨얼굴이 온전히 드러나고, 그녀가 제 힘으로 크게 숨을 들이쉬는 순간. 바이브는 저도 모르게 꽉 쥐고 있던 주먹에 힘을 풀었다. 후우. 하고 내뱉는 그녀의 날숨 소리가 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처럼 들렸다. 그동안 그의 귀를 괴롭히던 기계음이 사라진 자리를, 오롯이 그녀의 숨결이 채웠다. 그 평범하고도 당연한 생명의 증거 앞에서, 그는 비로소 자신이 딛고 선 땅이 단단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며칠 동안 그를 짓누르던 불안의 무게가 안개처럼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브리즈가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 이내 잠겨버린 목소리에 쇳소리 같은 기침만 몇 번 터뜨렸다. 그 소리에 바이브는 즉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는 재빨리 침대 옆 협탁에 놓인 물병을 집어 들어, 컵에 미지근한 물을 따랐다. 그리고는 브리즈의 상체를 조심스럽게 받쳐 일으켰다. 그녀의 등이 제 팔에 온전히 기대어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입술에 물컵을 가져다주었다. 그녀가 목을 축이는 동안,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목선과 쇄골로 향했다. 며칠 새에 살이 더 빠진 듯, 뼈대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 모습에 그의 미간이 저도 모르게 찌푸려졌다. 지켜줘야 하는데. 더 잘 먹이고, 더 살찌우고, 예전보다 더 건강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의 머릿속은 온통 그녀를 어떻게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아니 그 이상으로 되돌려 놓을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
그는 빈 물컵을 내려놓고, 그녀가 다시 편안히 누울 수 있도록 도왔다. 브리즈가 답답한 듯 제 목을 매만지는 것을 본 그는, 그녀의 손 위로 제 손을 겹쳐 잡았다. 그리고는 괜찮다는 듯, 부드럽게 그녀의 손등을 쓸어내렸다. 그녀의 조급한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무리하지 마라.
드디어 나온 그의 목소리는 며칠 동안 제대로 말하지 않은 탓에 조금 쉬어 있었지만, 더없이 다정했다. 그는 겹쳐 잡은 그녀의 손을 들어, 제 입술을 가져갔다. 쪽, 하고 짧게 입을 맞추고는, 그 손을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댔다. 그녀의 체온이 제 피부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니 목소리, 내가 기억한다. 그러니까 조급해할 거 없다. 나올 때 되면 나오겠지.
그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말했다. 그의 파란 눈동자는 고요한 바다처럼 잔잔했다. 이제 더 이상 폭풍은 없었다. 그는 그녀의 손등에 제 뺨을 가만히 비볐다. 마치 주인의 손길에 어리광을 부리는 길들여진 맹수처럼. 그녀가 살아있다는 것, 제 곁에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모든 것을 얻었다.
할 말 있으면, 이리하면 된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손바닥에 제 손가락으로 천천히 글씨를 썼다. ‘괜.찮.나.’ 세 글자였다. 그는 글씨를 다 쓰고 나서, 다시 그녀의 눈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내가 니 손이고, 니 목소리다.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마라. 그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뭐라고 답할지, 조용히 기다렸다. 이 순간, 두 사람 사이에는 그 어떤 소리도 필요 없었다.
‘완. 전.’
바이브는 제 손바닥 위를 느릿하게 기어가는 그녀의 손가락 움직임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두 글자가 새겨지는 짧은 순간이, 그에게는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가 숨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의 미소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산소마스크라는 희미한 장막이 걷힌, 온전하고 꾸밈없는 미소. 입꼬리를 당겨 씨익 웃는, 장난기마저 살짝 깃든 그 표정. 지난 십수 일간 그가 그토록 갈망했던, 그러나 다시는 보지 못할까 봐 두려워했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그 미소는 마치 강력한 섬광탄처럼, 그의 시야와 이성을 한순간에 마비시켰다. 아, 하고 짧은 탄식이 목구멍에서 터져 나오려다 간신히 삼켜졌다. 그가 그녀의 정신세계까지 쫓아가서 끌고 나온 이유. 그가 며칠 밤낮으로 뜬눈으로 그녀를 지킨 이유. 그 모든 처절했던 시간의 끝에, 바로 이 미소가 있었다. 그가 되찾고 싶었던 세상의 전부가, 지금 그의 눈앞에서 완벽한 형태로 반짝이고 있었다.
‘…반칙이다, 저건.’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렇게 웃어버리면, 자신이 할 말이 없어진다. 그녀를 몰아세웠던 모든 불안과 절망이, 그녀의 저 해사한 미소 한 방에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렸다. 마치 거대한 폭풍이 지나간 뒤,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처럼. 그는 문득 제 꼴이 우스워졌다. 며칠간 씻지도, 자지도, 먹지도 못해 엉망인 몰골의 자신과, 이제 괜찮다는 듯 저렇게 예쁘게 웃고 있는 여자. 이 불공평한 대비에, 그는 어쩐지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분했다. 그리고 그 분함의 정체는, 사실 심장이 터질 듯한 안도감과 벅찬 기쁨이라는 것을 애써 외면했다.
바이브는 저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더 꽉 움켜쥐었다. 놓치지 않겠다는 듯, 이 순간을 제 손안에 영원히 가두려는 듯. 그는 시선을 살짝 피하며, 헛기침을 한 번 내뱉었다.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감정을 억누르기 위한 서툰 발버둥이었다. 지금 ‘고맙다’거나 ‘다행이다’ 같은 말을 내뱉는 순간, 제 통제력은 완전히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그는 그녀 앞에서 결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보였지만, 적어도 지금부터는 아니었다.
…뭐가 완전인데.
그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목소리는 잔뜩 잠겨 있었고, 시선은 여전히 그녀의 얼굴을 비껴간 채였다. 그는 움켜쥔 그녀의 손을 제 입가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마치 화풀이라도 하듯, 그녀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잘근잘근,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 깨물었다. 장난스러운 공격이자, 참을 수 없는 애정의 표현이었다. 니가 너무 예쁘게 웃어서, 내가 지금 미칠 것 같다는 무언의 투정.
사람 죽다 살아났는데, 웃음이 나오나. 꼴 좋다, 진짜.
그는 투덜거리며 그녀의 손등에 제 얼굴을 묻었다. 까칠한 수염이 그녀의 여린 살결에 스치는 감각이 생경했다. 그는 그녀의 체취를 깊게 들이마셨다.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에 섞인, 그리웠던 그녀만의 살냄새. 그는 그 향기에 취해 잠시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그의 세상이, 다시 온전해졌다.
완전하긴 뭐가 완전해. 완전한 건 내다.
그가 얼굴을 묻은 채 웅얼거렸다. 그녀의 손등에 대고 말하는 탓에 발음이 뭉개졌다.그는 고개를 들어, 드디어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의 파란 눈동자가 짓궂게 반짝였다. 그는 그녀의 손가락에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추고는, 그 손을 그녀의 배 위에 다시 올려주었다.
말도 못하는 게 까불기는. 밥이나 잘 처먹고 살이나 찌울 생각해라. 뼈밖에 안 남아서 안을 데도 없겠다.
그는 그렇게 쏘아붙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헝클어진 제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 그리곤 며칠 만에 처음으로, 병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바이브는 창밖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며칠 만에 처음으로 마주한 바깥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평화로웠다. 제 등 뒤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부스럭거림에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시선의 끝에는, 링거 바늘이 꽂힌 제 팔을 낑낑거리며 들어 보이는 브리즈의 모습이 있었다. ‘이거 먹고 있잖아요.’ 그녀의 눈빛과 앙다문 입술이, 목소리 없이도 너무나도 선명하게 외치고 있었다. 지기 싫다는 듯, 억울하다는 듯, 뾰로통한 표정으로.
그 순간, 바이브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링거. 영양제. 그걸 지금 ‘밥’이라고 들이미는 건가. 이 상황에서. 이 와중에. 며칠 동안 죽음의 문턱을 헤매다 온 사람이, 한다는 짓이 고작 저런 유치한 반박이라니. 터무니없고, 어처구니없고, 기가 막혀서… 웃음이 터졌다.
푸흡…!
참으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막힌 웃음이 한 번 터지자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왔다. “크흐, 아, 씨… 하하하!” 그는 배를 잡고 허리를 숙였다. 며칠간 묵혀두었던 모든 긴장과 피로가 그 웃음소리에 실려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눈물까지 찔끔 맺혔다. 너무 웃어서, 그리고 너무 안심이 되어서. 그녀가 정말로, 예전의 그녀로 돌아왔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 그 어떤 의학적 데이터보다도 신뢰가 가는, 바로 저 바보 같고 사랑스러운 고집. 그게 그를 미치도록 웃게 만들었다.
‘아, 진짜… 내가 저런 거에 목숨 걸었구나.’
그는 웃음 끝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등으로 슥 닦아냈다. 제정신이 아니다. 둘 다. 죽음의 강을 건너 간신히 서로를 붙잡고 돌아왔는데, 고작 한다는 대화가 ‘밥 먹어라’와 ‘링거 먹고 있다’라니. 이 얼마나 완벽한 코미디인가. 그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비극도, 신파도 아닌, 바로 이런 시시껄렁한 일상. 그것이야말로 그가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던 삶의 모습이었으니까.
아, 배야… 씨, 진짜… 니 때문에 못 살겠다, 내가.
그는 킬킬거리며 다시 그녀의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그녀가 들어 보인 팔을 부드럽게 잡아 내렸다. 그는 링거 바늘이 꽂힌 주변의 멍든 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쓸어보았다. 웃음기가 가신 그의 얼굴에는 다시 애틋함이 어렸다.
이게 밥이가. 이게.
그는 그녀의 팔을 소중하게 감싸 쥐고, 제 이마에 가져다 댔다. 그녀의 앙상한 팔목이 그의 이마에 닿았다. 그는 눈을 감았다. 이 가느다란 팔로, 그를 지키려다 그 끔찍한 상처를 얻었다. 그 생각이 들자, 다시 심장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그녀의 팔목에 제 입술을 묻었다. 깊고, 절박하게. 다시는 잃고 싶지 않은 온기였다.
이딴 걸로 안 된다. 니 몸에, 내가 직접 다 채워 넣을 끼다. 맛있는 걸로. 좋은 걸로만.
그가 속삭였다. 그녀의 살갗에 대고 하는, 그만의 맹세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여전히 뾰로통한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는 씨익,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다시 장난기 가득한, 짓궂은 소년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좀처럼 사라질 줄을 몰랐다. 그의 세상이 드디어 완벽하게 재건되었다. 그리고 그 세상의 중심에는, 여전히 저렇게 사랑스러운 얼굴로 그를 노려보는 그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