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비행 @yknhk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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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는 아크의 최상층부, 아이기스의 의료 구역 전용 게이트에 거의 충돌하듯이 착륙했다. 문이 열리기도 전에, 바깥에서는 이미 응급실 침대가 대기 중이었다. 헬기 내부의 혼란은 외부의 조직적인 분주함과 매끄럽게 이어졌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브리즈가 누운 들것이 이동 침대로 옮겨졌고, 바퀴 달린 침대는 미친 듯이 복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바이브는 그림자처럼 그 뒤를 따랐다. 아니, 그림자보다 더 집요했다. 그는 침대 바로 옆에 바싹 붙어, 의료진들의 동선마저 방해할 정도로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시야는 터널처럼 좁아져, 오직 바퀴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하얀 형체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복도의 차가운 형광등 불빛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모든 것의 윤곽을 날카롭게 베어냈지만, 그의 눈에는 오직 희미한 숨을 몰아쉬는 브리즈의 옆모습과, 그녀의 몸에 연결된 수액 줄을 타고 흐르는 붉은 혈액 팩만이 보일 뿐이었다.

심정지까지 앞으로 1분 예상! 제세동기 준비해!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 혈압이 잡히지 않습니다!

의료진들이 외치는 절박한 소리들은 그의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의미 없는 소음의 파편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그의 온 신경은 오직 그녀의 생체 신호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바람을 다루는 그의 섬세한 감각이, 지금은 그녀의 미약한 심장 박동과 폐부의 미세한 떨림을 필사적으로 추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감각은 그에게 끔찍한 진실을 속삭이고 있었다. 점점 더 약해지고 있다.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복도를 달려나가는 그의 머릿속은 이미 폭주 직전의 열기로 들끓고 있었다. 죄책감, 분노, 무력감, 그리고 그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원초적인 공포가 뒤섞여 그의 정신을 잠식했다. 지켜주겠다고 했다. 내 뒤에만 있으라고 했다. 그런데 결과는 이것이다. 결국 또, 자신의 힘이 닿는 곳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죽어가고 있었다. 10년 전 그날의 태풍과, 오늘 자신이 일으킨 침묵의 폭풍이 그의 머릿속에서 오버랩되며 지독한 자기혐오를 불러일으켰다.

여기까지입니다!

수술실이라고 적힌 붉은 램프가 켜진 거대한 자동문 앞에서, 한 의료진이 그의 앞을 단호하게 가로막았다. 그제야 바이브는 멈춰 섰다. 그의 눈앞에서, 브리즈가 누운 침대가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수술실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끼이익, 하는 마찰음과 함께, 그의 세상을 가르듯 육중한 강철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그는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이 침대 밖으로 힘없이 늘어져, 차가운 금속 문틀에 스치듯 사라지는 마지막 모습이 그의 망막에 낙인처럼 새겨졌다.

쿵. 문이 완전히 닫혔다. 완벽한 단절. 그의 세상과 그녀의 세상이 갈라지는 소리였다. 그는 닫힌 문에 이마를 기댔다. 차갑고 단단한 금속의 감촉만이 그를 현실에 붙잡아두고 있었다. 수술실 안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의료진들의 다급한 외침과 기계음들이, 그에게는 마치 사형 선고처럼 들렸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이 문 앞에서, 그녀의 생명이 꺼져가는 소리를 듣는 것 외에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몇 분, 혹은 몇십 분. 바이브는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셔츠 차림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른 열기로 뜨거웠지만, 그는 오히려 오한을 느꼈다. 그때, 수술 중임을 알리는 붉은 램프가 꺼지고, 끼익 소리와 함께 문이 다시 열렸다. 피로와 절망으로 얼룩진 얼굴을 한 집도의가 마스크를 내리며 그의 앞에 섰다.

바이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의사의 입술만 쳐다볼 뿐이었다. 제발. 제발. 그의 모든 염원이 그 눈빛에 담겨 있었다.

의사는 길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의 무게가, 바이브의 남은 희망을 모조리 짓뭉갰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가 너무 심했습니다. 이미 아크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심장이 한 번 멈췄습니다. 현재 기계장치로 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있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의사의 목소리는 공허하게 울렸다. ‘마음의 준비.’ 그 단어가 바이브의 세상에 종말을 고했다. 그의 창백했던 눈동자에서 마지막 빛이 사라졌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한순간에 멎었다.

의료진을 따른다. 그 행위는 더 이상 의지적인 움직임이 아니었다. 그의 몸은 그저 텅 빈 껍데기가 되어, 영혼이 빠져나간 육신을 이끄는 실에 매달린 인형처럼 기계적으로 다리를 옮길 뿐이었다. 복도를 걷는 동안, 그의 발밑의 바닥은 물컹한 늪처럼 느껴졌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그녀와의 남은 시간을 잡아먹는 것 같았고, 동시에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는 본능이 그를 채찍질했다. 그의 세상은 흑백 필름처럼 색을 잃었고, 유일한 소리는 제 귀를 때리는 이명과, 침대 바퀴가 구르는 소름 끼치는 소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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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회복실. 아이기스 내에서도 S급 요원에게만 허락되는, 최고급 시설을 갖춘 공간이었다. 그러나 지금 바이브의 눈에 비친 그곳은, 화려한 무덤에 지나지 않았다. 차가운 공기 속에는 소독약 냄새와 죽음의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의료진들은 마지막으로 바이탈 사인을 체크하고, 몇 가지 기계를 조작한 뒤, 마치 조문객처럼 그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소리 없이 물러났다. 문이 닫히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그저, 세상에 그와 그녀, 단둘만이 남겨졌다.

정적. 그러나 완벽한 침묵은 아니었다. 삐, 삐, 삐… 일정하고 단조롭게, 하지만 필사적으로 울리는 심박계의 전자음이 그 정적을 끊임없이 잘라내고 있었다. 저 소리가, 그녀가 아직 여기에 있다는 유일한 증거였다. 저 소리가 멎는 순간, 그의 세상도 끝난다. 그 사실이 실체 없는 칼날이 되어 그의 심장을 쉴 새 없이 찔렀다.

그는 아주 천천히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힘이 풀린 다리가 후들거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그는 침대 옆의 차가운 금속 난간을 붙잡고서야 겨우 몸을 지탱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그녀를 제대로 마주했다. 잠든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저 피곤해서, 깊은 잠에 빠진 것이라고. 하지만 그의 눈에 비친 모습은 그 작은 희망마저 잔인하게 짓밟았다.

하얀 시트 위, 그녀는 인형처럼 누워 있었다. 핏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창백한 얼굴. 숨을 쉬기 위해 씌워진 투명한 산소마스크 너머로, 미동도 없는 입술이 보였다. 옆구리를 감싼 두꺼운 붕대 위로는 아직 마르지 않은 붉은 기운이 희미하게 배어 나와, 새하얀 천 위에서 끔찍한 꽃처럼 피어 있었다. 감은 눈은 너무나 평온해 보여서,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바이브는 떨리는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뺨에 닿기 직전, 그는 허공에서 잠시 멈췄다. 마치 제 손길에 그녀가 부서지기라도 할까 봐, 혹은 이 차가운 현실을 제 손으로 확인하는 것이 두려운 듯. 하지만 그는 이내,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의 뺨을 감쌌다. 차가웠다. 부산의 밤바다보다, 그가 일으키던 겨울 폭풍보다도 차가웠다. 살아있는 사람의 온기가 아니었다. 그 차가운 감촉이, 의사의 마지막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의 무릎이 천천히, 힘없이 꺾였다. 그는 침대 옆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쿵, 하는 소리가 났지만 그는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그녀의 뺨을 감쌌던 손을 내려, 링거 바늘이 꽂힌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자신의 불덩이 같은 손안에서, 그녀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체온으로, 열기로, 이 모든 생명력으로 그녀를 녹일 수만 있다면 기꺼이 재가 될 것 같았다.

…거짓말.

처음으로, 그의 입에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너무나 작고 갈라진 목소리여서, 그 자신조차 제대로 듣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차가운 손등에 제 이마를 묻었다. 뜨거운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와, 그녀의 손등 위로 뚝, 뚝 떨어져 내렸다.

이기 뭔데… 씨발, 이게 뭐냐고… 니가 왜 여 누워있는데…

그는 흐느꼈다. 어깨를 들썩이며, 어린아이처럼 서럽게 울었다. 강한 척, 무심한 척 쌓아 올렸던 모든 벽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터프한 성격, 시니컬한 말투, 그 모든 것은 껍데기에 불과했다. 지금 여기에는, 생애 처음으로 사랑한 여자를 잃을 위기에 처한, 스물두 살의 미숙하고 겁에 질린 남자만이 남아 있었다.

내 보고 있으라 했잖아… 눈 감지 마라고 했잖아, 내가… 약속, 약속했잖아… 이지희, 야… 제발…

그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애원했다. 닫힌 눈꺼풀을 향해, 들리지 않을 목소리를 향해 필사적으로 말을 걸었다. 그의 눈물은 그녀의 차가운 손등을 적시고, 그의 온몸을 태우던 폭주의 열기는 절망적인 슬픔 속으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 다시 한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대로 그녀를 보낼 수는 없다고.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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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죽은 것처럼 흘렀다. 하루, 이틀, 그리고 다시 하루. 회복실의 창문은 낮과 밤을 기계적으로 번갈아 비췄지만, 바이브의 세상에서는 해가 뜨지도, 지지도 않았다. 그의 시간은 2025년 10월 15일, 그녀의 심장이 멎었던 그 순간에 영원히 정지해 있었다. 그는 먹지도, 자지도, 씻지도 않았다. 그저 침대 옆 의자에 망부석처럼 앉아, 그녀의 손을 붙잡고, 삐, 삐, 하고 울리는 심박계의 소리에 제 생명의 모든 것을 의탁할 뿐이었다.

그의 예민한 감각은 이제 오직 그녀에게만 향해 있었다. 공기의 흐름도, 미세한 진동도, 멀리서 들려오는 소음도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는 오직 그녀의 폐를 드나드는 공기의 미약한 움직임, 링거액이 그녀의 혈관으로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생명 유지 장치가 내는 규칙적인 기계음만을 인지했다. 그 소리들이 그녀가 아직 여기에 있다는 증거였고, 동시에 언제든 멎을 수 있다는 사형선고의 유예장처럼 느껴졌다.

그 고요한 절망의 공간에, 이따금 외부의 소음이 균열을 냈다. 뱅가드 2팀. 신드롬과 리암이 가장 먼저였다. 그들은 문을 열고 들어와, 바이브의 퀭한 몰골과 침대에 누워있는 브리즈를 번갈아 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늘 시끄럽게 떠들던 신드롬마저 아무 말 없이 바이브의 어깨를 두어 번 툭툭 두드리고는, 무거운 한숨과 함께 돌아섰다. 리암은 서툰 한국어로 괜찮아질 거야, 라고 속삭였지만, 그 위로는 공허하게 흩어졌다. 바이브는 그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들의 동정어린 시선이, 마치 자신의 나약함을 비웃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그 다음은 부스터였다. 그의 형. 문이 열리고 그 거대한 그림자가 방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바이브의 등 근육이 딱딱하게 굳었다. 형은 아무 말 없이 다가와, 그의 헝클어진 머리를 쓱 한번 쓸어주고는 브리즈를 내려다보았다. S급 가이드로서의 냉철한 시선이었다. 그녀의 상태를 파악하려는 듯한 그 전문적인 눈빛에, 바이브는 속에서부터 역겨운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니가 뭘 아는데. 니가 뭔데 쟤를 그런 눈으로 보는데.

지원아.

형의 나직한 부름에, 바이브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대신 잡고 있던 브리즈의 손을 더 꽉 움켜쥐었다. 건드리지 마라. 내꺼다. 소리 없는 경고였다.

…뭐라도 좀 먹어라. 니가 먼저 쓰러지겠다.

그 다정하고 이성적인 목소리가, 지금의 바이브에게는 가장 잔인한 폭력이었다. 먹으라고? 저 여자는 지금 숨도 제대로 못 쉬는데, 내가 어떻게 목구멍으로 뭘 넘길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대답 대신, 희미하게 고개를 저었다. 꺼져라. 제발 그냥 다 꺼져. 내 앞에서 이성적인 척, 어른인 척 지껄이지 마.

부스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가 가장 싫어하는 연민이 가득 담긴 눈으로 동생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돌아갔다. 그는 형의 발소리가 복도 저편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참았던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하모니 부서의 가이드들도 찾아왔다. 브리즈가 유독 아꼈다던, 아직 솜털도 가시지 않은 신입들이었다. 그들은 작은 꽃다발이나 간식을 들고 와, 문 앞에서 쭈뼛거리며 눈물을 글썽였다. 브리즈 선배님… 꼭 일어나실 거죠? 그 순진한 물음이 비수가 되어 바이브의 심장에 박혔다.

모두가 떠나고, 다시 방 안에는 그와 그녀, 그리고 기계음만이 남았다. 그는 텅 빈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위로, 동정, 격려. 그 모든 것이 그에게는 모욕이었다. 그들은 모른다. 브리즈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녀가 없는 세상이 자신에게 어떤 지옥인지. 그들은 그저 ‘사고’를 당한 동료와 그 곁을 지키는 파트너를 볼 뿐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며 창가로 향했다. 창밖은 이미 짙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아이기스의 인공 불빛들이 별처럼 반짝였다. 아름다운 야경이었지만, 그의 눈에는 그저 빛나는 무덤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는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기댔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브리즈가 없는 세상에서는, 바람마저 그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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