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품에서 쏙 빠져나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팬에 불린 당면까지 넣고 능숙하게 볶아내는 손길.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소하고 달큰한 간장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했다. 이 냄새, 이 소리, 그리고 이 풍경. 그는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시 자석처럼 그녀의 등 뒤로 이끌렸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녀의 체향과 음식 냄새가 뒤섞인, 세상에서 가장 안락한 공간으로. 바로 그때였다.
예상치 못한 공격이 그의 다리를 톡, 하고 건드렸다. 공격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가볍고 장난스러운 발길질. 바이브는 저도 모르게 억, 하고 짧은 소리를 내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물론 아파서가 아니었다. 놀라서, 그리고 어이가 없어서. 그는 황당한 표정으로 제 다리와 그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참, 거의 다 됐어요. 그만 귀찮게 해요. 앉아서 기다리라니깐…! 내가 그렇게 좋아요?
샐쭉하게 삐져나온 입술, 살짝 치켜 올라간 눈썹, 그러면서도 숨길 수 없는 웃음기가 어린 눈동자. 바이브는 그녀의 그 당돌한 표정을 마주하고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방금 전까지 에피타이저니 뭐니 하는 제 짓궂은 농담에 얼굴을 붉히던 사람은 어디 가고, 이제는 대놓고 도발까지 하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좋아요?’ 라니. 이건 뭐, 작정하고 덤비는 수준 아닌가.
그는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좋아하냐고? 이 질문만큼 어리석고 부질없는 질문이 또 있을까.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었다. 그는 이지희라는 여자에게 단단히 미쳐 있었다. 그녀가 끓여주는 미역국 냄새에 아득한 과거의 향수를 느끼고, 그녀가 볶아내는 잡채 냄새에 속절없이 허기를 느끼는 제 자신이 낯설었다. 단 한 순간도 눈을 떼고 싶지 않아서, 한 뼘이라도 더 가까이 있고 싶어서 안달하는 이 마음을, 그녀는 과연 알고나 있을까.
좋아한다. 눈을 감아도, 숨을 쉬어도, 온 세상이 너로 가득 차는 이 기분을 단순히 ‘좋아한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내 모든 감각을 어지럽히던 세상의 모든 소음이 너로 인해 비로소 잠잠해지고, 칼날처럼 파고들던 공기의 흐름이 너로 인해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되는 이 기적을. 너는 모를 것이다. 네가 얼마나 대단한 여자인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는 그 모든 말을 삼키고, 대신 가장 바이브다운 방식으로 대답하기로 했다.
하… 진짜 돌았나, 이 여자가.
그는 마른세수를 한번 하더니,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시 다가갔다. 이번에는 뒤가 아니라, 정면에서. 그녀가 놀라 뒷걸음질 치기도 전에, 그는 팬을 든 그녀의 손목과 반대쪽 허리를 단단히 휘어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 바람에 볶아지던 잡채가 팬 안에서 가볍게 출렁였다.
내 좋냐고? 니 지금 그게 질문이라고 하나. 어?
그의 얼굴이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뜨거운 열기가 확 끼쳐왔다. 고소한 음식 냄새와, 그의 페퍼민트 향이 뒤섞여 아찔한 향기를 만들어냈다. 그는 샐쭉하게 저를 올려다보는 그 고집스러운 입술을 지그시 바라보며, 일부러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아니. 안 좋다. 니 하나도 안 좋다. 시끄럽고, 귀찮고, 손 많이 가고. 툭하면 나가자고 조르고, 툭하면 이런 걸로 내 속 뒤집어 놓고. 좋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니는. 근데… 근데 와 자꾸 눈에 밟히는데. 와 자꾸 신경 쓰이는데. 와 내 미역국은 니가 끓여줘야 될 것 같고, 내 생일은 니가 옆에 있어야만 완성될 것 같은데. 이걸 좋다고 하는 거면… 뭐, 그런 거겠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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