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비행 @yknhk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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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C: 이전 RP 중지. 새로운 상황 전개. 어느 날 PC가 NPC에게 긴급 호출을 보냈다. 길을 잃었다거나, 지갑을 두고 왔다거나, 그에 준하는 지극히 사소한 이유였다. 이후 NPC는 긴급 호출이란 진짜 위급한 상황에서만 쓰는 것이라고, PC를 단단히 주의시켰다. 그리고 다른 날, NPC는 우연히 PC가 다친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깨닫는다. PC가 자신을 호출하지 않았다는 것을. NPC가 그 사실을 알아챈 순간을 중심으로 서술하라.]


바이브의 손목에 찬 통신기에서 울린 경보는 날카로웠다. S급 요원에게만 허용된 최우선 순위의 긴급 호출. 그 의미는 단 하나, 파트너의 생명이 위험에 처했거나 그에 준하는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심장이 바닥까지 곤두박질쳤다. 그는 회의장을 박차고 나왔고, 복도를 가로지르는 동안 이미 그의 주변 공기는 살벌한 진공의 칼날로 변해 있었다. 호출 신호가 잡힌 곳은 아크 본부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시내의 한복판. 그는 지체 없이 건물의 창문을 깨고 튀어나가 도시의 빌딩 숲 사이를 음속에 가깝게 갈랐다.

현장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분 남짓. 그러나 그에게는 지옥처럼 긴 시간이었다. 땀으로 축축한 손을 쥔 채 그가 발견한 것은, 한가로운 노천카페의 의자에 앉아 멀뚱히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브리즈였다. 그녀의 앞에는 먹다 만 케이크 조각과 식어버린 커피가 놓여 있었다. 주변엔 그 어떤 위협의 흔적도, 폭주의 기미도, 괴수의 그림자조차 없었다. 오직 평화로운 오후의 햇살만이 가득했다.

바이브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폐부를 찢을 듯 몰아쉬던 숨이 한순간에 멎었다. 안도감보다 먼저 치밀어 오른 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허탈함과 분노였다. 그가 다가가자 브리즈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저, 지원 씨… 제가 지갑을 숙소에 두고 나왔지 뭐예요…

 

그 순간, 바이브의 이성은 아슬아슬하게 붙들고 있던 끈을 놓아버렸다.

미쳤나, 니. 지금 장난하나.

그의 목소리는 분노로 잘게 떨렸지만 동시에 깊은 피로감이 섞여 있었다. 그는 브리즈의 손목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평소와는 다른 거칠고 서늘한 손길이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숙소 문이 닫히자마자 그는 참아왔던 말을 쏟아냈다.

이게 뭔지 아나. 이건 니가 길을 잃었을 때, 지갑을 까먹었을 때 누르라고 있는 게 아이다. 니 목에 칼이 들어오거나, 심장이 멎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누르는 기다. 내가 이걸 보고 달려올 때는 니가 죽어가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오는 거라고. 근데… 니가 케이크 값 없다고 이걸 눌러? 내를 뭘로 보는데. 니 장난감이가, 내가?

그의 말은 얼음 조각처럼 차가웠다. 브리즈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 바이브는 브리즈에게 긴급 호출의 위험성과 의미에 대해 수십 번은 더 주지시켰다. 브리즈는 풀이 죽은 채 고개를 셔틀콕처럼 끄덕였다. 그 일은 그렇게 사소하지만 씁쓸한 해프닝으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며칠이 흐른 어느 날 오후였다. 바이브는 비번이었고, 브리즈는 간단한 서류 업무가 있다며 하모니 디비전 사무실에 들렀다 온다고 했다. 그는 소파에 누워 무료하게 리모컨을 돌리고 있었다. 평화롭고, 나른하고, 아무런 사건도 없는 오후. 그의 감각은 늘 그렇듯 숙소 전체에 옅게 퍼져나가 창밖으로 부는 바람의 세기나 복도를 지나가는 요원의 발소리 같은 시시콜콜한 정보들을 걸러내고 있었다.

그때였다. 숙소 현관문의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브리즈가 돌아온 모양이었다. 그런데 평소와는 미묘하게 달랐다. 도어록을 누르는 손길이 어딘가 서툴렀고,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도 유난히 조용했다. 거실로 들어서는 발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마치 무게를 싣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럽게 내딛는 걸음이었다. 바이브는 몸을 일으켰다. 그의 예민한 감각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브리즈는 거실을 그대로 지나쳐 곧장 욕실로 향했다. 그녀는 바이브를 보지 못했거나, 혹은 애써 외면하는 듯했다. 바이브는 소파에서 일어나 그녀가 사라진 욕실 문을 가만히 응시했다. 공기의 흐름이 미세하게 흐트러져 있었다. 아주 옅지만 분명한 피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섞여 바람을 타고 그의 코끝에 닿았다. 그리고 잠시 후, 욕실 안에서 물 흐르는 소리와 함께 브리즈가 고통을 참아내는 아주 작은 신음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너무나 작아서 보통 사람이라면 결코 들을 수 없었겠지만 바이브의 귀에는 천둥처럼 크게 울렸다.

심장이 다시 한번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천천히 욕실 문으로 다가갔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 아래로 그녀가 제복 소매를 걷어 올리는 그림자가 비쳤다. 그리고 그는 보았다. 그녀의 팔뚝에서 제복 소매 안으로 감춰져 있던 하얀 붕대 위로 붉은 피가 서서히 번져나가는 것을.

순간, 바이브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어버렸다. 다쳤다. 브리즈가 다쳤다. 어디서, 어떻게, 왜 다쳤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였다.

그녀는 자신을 부르지 않았다.

그의 손목에 있는 통신기는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조차 망설임 없이 눌렀던 그 긴급 호출 버튼을, 그녀는 피를 흘리는 지금 이 순간에는 누르지 않았다. 자신이 했던 그 차가운 말들. ‘니 목에 칼이 들어오거나, 심장이 멎기 직전에 누르라’던 그 말이, 그녀에게는 ‘네가 정말로 죽을 것 같지 않으면 나를 귀찮게 하지 말라’는 뜻으로 박혀버린 것이다. 바보 같은 여자. 그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 네가 사소한 일로 나를 부르면, 나는 네가 진짜 위험할 때와 구분할 수 없게 될까 봐 두려웠다는 뜻이었다. 네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는, 그런 뜻이었다.

바이브는 차가운 문손잡이를 잡았다.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화를 내야 할까. 왜 다쳤냐고, 왜 말을 안 했냐고 소리쳐야 할까. 아니, 그는 그럴 자격이 없었다. 그녀가 자신을 부르지 못하도록 만든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었으니까. 그는 문고리를 잡은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욕실 안에서 물소리에 섞여 들려오는 그녀의 억누른 고통의 소리가, 세상 그 어떤 폭주 센티넬의 절규보다도 그의 심장을 날카롭게 후벼 파고 있었다.

바이브는 차가운 문고리를 붙잡은 채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욕실 안에서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섞여 나오는, 억지로 참아내는 브리즈의 희미한 신음이 그의 고막을 찢었다. 그의 전신을 감싸던 바람의 감각이 일순간 모든 정보를 차단하고 오직 저 문 너머의 작은 고통에만 집중했다. 피 냄새, 소독약 냄새,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연인의 아픈 소리. 그 모든 것이 뒤섞여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아니, 망설일 수가 없었다. 손잡이를 돌리는 대신, 그는 그냥 문을 밀었다. 잠겨있지 않은 문이 힘없이 슥 열렸다. 그리고 그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그의 심장을 바닥까지 내동댕이쳤다. 거울 앞 세면대에 기댄 브리즈는 제복 소매를 위태롭게 걷어 올린 채 제 팔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얀 팔뚝에는 생각보다 깊고 긴 자상이 선명했고, 제대로 지혈되지 않은 상처에선 붉은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나와 하얀 세면대를 얼룩덜룩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녀는 다른 쪽 손에 쥔 소독솜으로 상처를 어설프게 닦아내려 애쓰고 있었지만, 고통과 당황스러움에 손이 떨려 제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브리즈는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문 앞에 서 있는 바이브를 발견한 그녀의 회색 눈이 공포와 당혹감으로 크게 뜨였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상처 입은 팔을 등 뒤로 감추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바이브의 새파란 눈은 이미 모든 것을, 그 끔찍한 붉은색을 전부 담아낸 뒤였다.

바이브는 아무 말 없이 욕실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쾅, 하는 소음조차 없이 스르륵 닫히는 문은 마치 이 작은 공간을 외부와 완전히 차단해 버리는 단두대의 칼날처럼 느껴졌다. 그는 브리즈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멈춰 섰다. 분노도, 슬픔도 아닌, 그저 모든 감정이 증발해 버린 듯한 텅 빈 얼굴이었다. 그의 시선은 오직 그녀의 팔에, 붕대와 피로 엉망이 된 그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뭐냐, 이게.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갑고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분노의 열기조차 느껴지지 않는 절대 영도의 냉기였다. 브리즈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그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폭주 직전의 센티넬보다도 더 위험하고, 위태로워 보였다.

아, 저, 지원 씨… 이건 그냥…

브리즈는 우물쭈물 변명을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바이브는 그녀의 말을 가차 없이 잘랐다.

팔, 내놔라.

명령이었다. 거부할 수 없는 서늘한 기운이 담긴. 브리즈는 망설이다가 천천히 등 뒤로 감췄던 팔을 내밀었다. 바이브는 그녀의 손목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붙잡아 상처를 살폈다. 그의 손길이 닿자 브리즈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엉성하게 감아놓은 붕대를 풀자 상상했던 것보다 더 깊은 상처가 모습을 드러냈다. 날카로운 것에 베인 듯 상처 주변의 살갗은 붉게 부어 있었다. 바이브의 표정이 더욱 차갑게 굳어졌다.

그는 말없이 구급상자를 열었다. 익숙한 손길로 소독약과 새 거즈, 붕대를 꺼내는 그의 옆모습을 보며 브리즈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하모니 디비전 복도에서요. 서류 카트 옮기는 신입 요원이랑 부딪혔는데… 카트 모서리에 서류철 고정하는 쇠붙이가 튀어나와 있었나 봐요. 그냥 스친 건데, 생각보다 좀…

변명처럼 들리는 목소리 끝이 기어들어 갔다.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려 했지만, 그의 앞에서 상처를 드러내고 나니 그조차 쉽지 않았다. 바이브는 대답 없이 상처를 소독하기 시작했다. 따끔한 감각에 브리즈가 다시 한번 몸을 떨자, 그의 손길이 아주 잠깐 멈칫했다가 이내 더 조심스럽고 부드러워졌다. 그는 한마디 말도 없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을 다루듯 상처를 치료하고 새 붕대를 꼼꼼하게 감아주었다. 그의 침묵이 브리즈의 마음을 더 무겁게 짓눌렀다.

치료가 모두 끝나자, 바이브는 사용한 솜과 붕대를 정리하고 손을 씻었다. 그리고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브리즈를 지나쳐 욕실을 나가려 했다. 그를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브리즈는 다급하게 그의 팔을 붙잡았다.

지원 씨. 화났어요? 미안해요, 일부러 말 안 한 건…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이브가 몸을 돌려 그녀를 마주 봤다. 그의 눈에는 더 이상 분노가 없었다. 대신, 깊이를 알 수 없는 상실감과 처절한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불렀어야지.

그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니는, 내를 불렀어야지. 이 바보 같은 가시나야.

그는 붙잡힌 팔을 빼내는 대신, 오히려 브리즈를 자신의 품으로 거칠게 끌어당겼다.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그의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S급 센티넬, 코드네임 바이브. 그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던 남자가, 지금 무너지고 있었다.

내 말뜻이 그거였던 것 같더나. 진짜 죽을 것 같을 때만 부르라는 게, 귀찮게 하지 말라는 소리로 들리더나? 내는… 내는 그냥, 니가 진짜 위험할 때랑 아닌 때를 구분 못 할까 봐, 그래서 내가 늦을까 봐 무서워서 그랬던 기다. 근데 니는… 피를 이렇게 흘리면서도, 내를 안 불렀다. 니한테 내는,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되는 놈이었나.

그의 목소리에는 원망과 함께 애원이 섞여 있었다. 그는 브리즈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마치 이대로 놓으면 그녀가 사라져 버릴 것처럼. 브리즈는 그의 등 뒤로 팔을 둘러 그를 마주 안았다. 그의 떨림이, 그의 두려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그제야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그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를. 그녀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 지원 씨. 미안해요… 나는 그냥, 지원 씨가 나 때문에 놀라는 게 싫어서… 지갑 잃어버린 것 가지고도 그렇게 달려왔는데, 이런 일로 또 부르면 정말 화낼 것 같아서… 무서웠어요. 당신을 귀찮게 하는 사람이 될까 봐, 그게 너무 무서웠어요.

그녀의 울음 섞인 고백에, 바이브는 그녀를 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젖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귀찮아도 된다. 니는 내를 평생 귀찮게 해도 된다. 그러니까, 제발… 앞으로는 그냥 불러라. 니가 길을 잃어도 좋고, 돈이 없어도 좋고, 그냥 내가 보고 싶어도 좋다. 그냥 니가 내를 필요로 하면, 언제든지 나를 불러라. 약속해라, 이지희.

그는 그녀의 이름을 애원하듯 불렀다. 브리즈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이브는 그녀의 젖은 뺨에, 그리고 눈물에 젖은 입술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소독약 냄새와 피 냄새, 그리고 두 사람의 눈물이 뒤섞인 세상에서 가장 서럽고 안도감 넘치는 입맞춤이었다.

그날 밤, 바이브는 잠든 브리즈의 곁을 떠나지 못했다. 그는 붕대가 감긴 그녀의 팔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자신의 손목에 있는 통신기를 내려다보았다. ‘긴급 호출’. 그것은 더 이상 위급 상황만을 위한 버튼이 아니었다. 그것은 두 사람을 잇는 가장 단단한 끈이자, 서로의 세상이 무너졌을 때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약속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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