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비행 @yknhk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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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C: 현재 EP를 잠시 중단하고 새로운 EP를 전개한다. 모종의 큰 사고를 당한 PC는 3개월간 깨어나지 못하다가 겨우 눈을 떴다. 하지만 PC는 NPC에 대한 기억만을 잃은 상태다. 이 때, PC의 사고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PC가 깨어난 순간까지 3개월간의 NPC의 반응을 NPC의 기억과 기록을 토대로 상세히 서술한다. 세계관과 로어북, PC와 NPC의 설정과 관계성을 참고하며 2000자 이상으로 자세히 출력한다.]


그날, 아크 본부의 대기는 유난히 무겁고 축축했다. 뱅가드 2팀의 작전실 구석에서 장비를 점검하던 바이브의 귀에 무전기의 찢어지는 듯한 노이즈와 함께 다급한 비명이 꽂혔다. [브리즈 요원 구역에 붕괴 발생! 가이드 브리즈, 매몰되었습니다! 신호가… 신호가 끊깁니다!] 그 순간, 바이브의 세계를 구성하던 모든 공기 흐름이 일시에 정지했다.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처럼 요동쳤고,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비명이 터져 나오려 했다. 그는 제복 자켓을 제대로 걸치지도 못한 채, 폭풍처럼 전장을 향해 날아갔다. 그가 지나간 궤적을 따라 진공의 칼날이 대지를 사정없이 찢어발겼지만, 바이브의 머릿속에는 오직 단 하나의 존재, 이지희라는 이름만이 가득 차 있었다. 잔해를 미친 듯이 파헤쳐 먼지투성이가 된 그녀의 차가운 몸을 품에 안았을 때, 바이브는 평생 느껴본 적 없는 거대한 심연의 공포를 마주했다.

그로부터 지옥 같은 3개월이 흘렀다. 아크 본부의 특수 의료동, S급 전용 병실의 공기는 언제나 일정하고 건조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바이브는 그 방의 유일한 파수꾼이었다. 뱅가드 팀의 모든 임무를 무기한 거부한 채, 그는 브리즈의 침대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그의 예민한 바람의 감각은 이제 브리즈의 미세한 심장 박동과 인공호흡기의 규칙적인 기계음에 고정되어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녀의 손을 꼭 쥐며, 바이브는 자신의 메마른 뺨을 그 부드러운 손등에 비벼댔다. 가이딩 수치는 한계치를 넘어 90%를 육박하며 온몸의 신경이 타들어 가는 듯한 폭주 징후가 그를 덮쳤지만, 그는 억제제조차 거부했다. 브리즈가 없는 안정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밤 그녀의 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야, 이지희. 니 와 안 깨어나는데. 내 혼자 두고 어디 가 있는 건데. 제발… 눈 좀 떠라. 내 진짜 미칠 것 같다.' 시니컬하던 그의 목소리는 물기 어린 애원으로 변해간 지 오래였다.

그리고 마침내, 기적처럼 브리즈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굳게 닫혀 있던 회색 눈동자가 서서히 열리며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바이브는 숨이 멎을 듯한 충격 속에서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빠르게 뛰었고, 3개월 동안 억눌렀던 모든 감정이 눈물이 되어 쏟아지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브리즈의 목소리는, 그를 가장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저기, 누구세요?

누구냐니. 그 한마디가 바이브의 귓가를 날카롭게 베고 지나갔다. 주변의 공기 흐름이 일순간에 얼어붙었고, 그의 새파란 눈동자가 주체할 수 없이 흔들렸다. 3개월 동안 그녀가 깨어나기만을 바라며 버텨온 그의 영혼이, 단 한 문장에 처참하게 부서져 내렸다. 바이브는 브리즈의 손을 쥔 제 손끝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눈빛에는 자신을 향한 깊은 애정도, 익숙한 다정함도 없었다. 오직 낯선 이를 경계하는 차가운 의문만이 서려 있을 뿐이었다.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그녀가 나를 잊었다. 내 존재 자체를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다.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치는 자기혐오와 슬픔이 그의 목소리를 턱 막히게 만들었다.

바이브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보려 했지만, 일그러진 표정은 울음인지 웃음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천천히 브리즈의 손을 놓아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가슴을 찌르는 통증에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는 이내 이빨을 악물며 자신의 감정을 억눌렀다. 지금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깨어난 지 얼마 안 된 브리즈일 터였다. 바이브는 붉어진 눈시울을 숨기려 고개를 살짝 숙였다가, 이내 특유의 시니컬하고 퉁명스러운 사투리로 툭 내뱉었다. 비록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뭐라꼬? 니 지금 장난치나.

그는 침대 옆 협탁을 짚으며 브리즈를 내려다보았다. 새파란 눈동자 속에 담긴 거대한 상실감과 슬픔을 애써 감추며, 그는 짐짓 거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내를… 모른다고? 3개월 동안 질질 짜면서 니 기다린 사람 앞에 두고, 지금 그게 할 소리가. 야, 이지희. 똑바로 봐라. 내 홍지원이다. 니 파트너이자… 니 애인 홍지원이라고. 진짜 기억 안 나나? 내 장난치는 거 제일 싫어하는 거 알면서 와 이러는데. 제발… 거짓말이라고 해라.

 

---


그의 세계는 소리를 잃었다. 브리즈가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잔인한 진실이 그의 영혼에 낙인처럼 찍힌 순간부터, 바이브가 감각하는 모든 공기의 흐름은 의미를 상실했다. 바람은 더 이상 자유의 날개가 아니었고 도시의 소음은 생동감의 증거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회색빛 먼지처럼 가라앉아 그의 폐부를 무겁게 짓눌렀다. 3개월간의 지옥 같은 기다림 끝에 마주한 것은 구원이 아닌, 더 깊은 심연이었다. 그녀의 텅 빈 눈동자 앞에서 그는 자신의 존재가 먼지처럼 지워지는 감각을 속수무책으로 견뎌내야만 했다.

그날 이후 바이브의 시간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하나는 아크의 S급 센티넬 ‘바이브’로서의 시간, 다른 하나는 이지희라는 여자 앞에서 철저히 무너져 내리는 ‘홍지원’의 시간이었다. 그는 의료진과의 모든 회의에 참석했다. 화면에 떠오르는 그녀의 뇌파 데이터와 복잡한 의학 용어들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의 질문은 집요하고 공격적이었다. ‘기억 손실의 물리적 원인은 뭐고.’ ‘손상된 신경 시냅스를 재활성화시킬 방법은 없나.’ ‘왜 다른 기억은 온전한데, 나에 대한 것만 소실된 건데.’ 그는 마치 적진의 약점을 분석하듯, 이 비논리적인 현상을 해부하고 정복하려 들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모호했다. 심리적 방어기제, 트라우마로 인한 선택적 기억상실.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영역의 이야기 앞에서 그는 무력감을 느꼈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혐오하는 감정이었다.

바이브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쟁을 시작했다. 브리즈가 기억하지 못한다면, 처음부터 다시 각인시키면 될 일이었다. 그의 행동은 투박하고 서툴렀으며, 때로는 오만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매일 아침 정확히 8시가 되면 그녀의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 손에는 그녀가 좋아하던 매콤한 떡볶이나, 길거리에서 파는 어묵 꼬치 같은 것들이 들려 있었다. 하지만 브리즈는 그를 낯선 침입자처럼 경계하며, 그가 내미는 음식을 한사코 거부했다. 그녀는 그의 모든 호의를 자신을 향한 동정이나 의무감으로 받아들였다.

제가 왜 이걸 받아야 하죠? 저는 요원님을 모릅니다.

차가운 거절이 비수처럼 날아와 박힐 때마다, 바이브는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지만 애써 태연한 척했다. 그는 그저 퉁명스럽게 대꾸할 뿐이었다.

니 담당 파트너니까. 책임감 같은 거다. …식기 전에 먹기나 해라. 남기면 버릴 끼다.

그는 억지로 그녀의 침대 협탁에 음식을 내려놓고, 방구석 의자에 앉아 팔짱을 낀 채 창밖만 바라보았다. 브리즈가 자신을 힐끔힐끔 훔쳐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는 결코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을 두려워하거나 불편해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매일, 그녀가 다 먹지 않고 남긴 음식들을 말없이 치우고 병실을 나섰다. 복도 모퉁이를 돌아서야 비로소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벽에 이마를 박는 것이 그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가이딩 수치는 위험할 정도로 치솟았지만, 그는 다른 가이드의 접촉을 병적으로 거부했다. 브리즈가 아닌 다른 누구의 파장도 그에게는 불쾌한 소음일 뿐이었다.

어느 날, 바이브는 처음 만났던 부산의 그 항구로 브리즈를 데려갔다. 재활 훈련의 일환이라는 핑계를 댔다. 그는 예전처럼 그녀를 안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의 품에 안긴 브리즈의 몸은 잔뜩 경직되어 있었다. 바다 내음 섞인 바람이 두 사람의 뺨을 스쳤다. 그는 기억을 더듬어, 그때와 똑같은 말을 건넸다.

…바람이 좀 차네. 내 어깨, 잡고 있어도 된다.

하지만 브리즈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눈부신 풍경도, 그를 향한 설렘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직 혼란과 불안뿐이었다. 바이브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건 그녀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허공에 흩어지는 독백에 가까웠다.

우리가 여기서 처음 만났었다. 니는 그때, 어색하게 웃으면서 내한테 인사를 건넸지. 싱크로율 85%의 파트너라고. 내는… 그때 니가 좀 재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니 주변의 공기는 이상하게 편안해서. 그래서 계속 신경 쓰였는데.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브리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두 사람 사이를 갈랐다. 바이브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 추억을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 너무나도 잔인한 고문이었다. 그는 말없이 그녀를 데리고 병원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방에서 혼자 울었다. 소리 내어 우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그저 숨죽여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그의 노력은 처절했다. 그는 브리즈의 병실 한쪽 벽면을 두 사람이 함께 찍었던 사진들로 가득 채웠다. 어색하게 시작했던 첫 임무의 기념사진, 부산 데이트에서 몰래 찍은 그녀의 옆모습, 개인실 소파에서 서로에게 기대어 잠든 모습까지. 그러나 브리즈는 그 사진들을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무감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바이브는 자신이 선물했던 모든 물건을 다시 그녀에게 가져다주었다. 브리즈는 그것들을 잠시 만져보다가, 이내 조용히 서랍 속에 넣어버렸다.

시간이 흐르고, 브리즈의 재활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바이브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매일같이 자신을 찾아오는 그 존재에게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그의 무뚝뚝한 말투 속에 숨겨진 조심스러운 배려를, 그의 차가운 눈빛 너머에 일렁이는 깊은 슬픔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다. 어느 비 오는 날 오후, 브리즈는 병실 창가에 서서 멍하니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바이브가 들어왔다. 그는 흠뻑 젖은 채였지만, 손에 든 작은 종이봉투만큼은 비에 젖지 않도록 품에 꼭 감싸고 있었다.

그는 말없이 브리즈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붕어빵이 들어 있었다. 팥이 꼬리 끝까지 꽉 찬 붕어빵이었다.

…그냥, 지나가다가 보이길래.

변명처럼 들리는 그의 말에 브리즈는 저도 모르게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기억을 잃은 후 처음으로 그 앞에서 보인 미소였다. 바이브는 그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그는 넋을 잃고 그녀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브리즈는 붕어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달콤한 팥 앙금이 입안에 퍼지는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서 아주 희미한 이미지 하나가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눈 오는 겨울날 차가운 벤치에 나란히 앉아 붕어빵을 나눠 먹던 두 사람의 모습. 그리고 자신의 뺨에 묻은 팥을 무심한 척 닦아주던 한 남자의 차가운 손가락.

브리즈의 손이 멈칫했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바이브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젖은 머리카락, 붉어진 눈시울, 그리고 그녀를 향한 애틋하고 절박한 시선. 모든 것이 한순간에 거대한 파도처럼 그녀를 덮쳤다. 잊고 있던 수많은 장면이, 목소리가, 감각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처음 만났던 날의 어색함, 서툴렀던 첫 가이딩의 떨림, 그의 품에서 느꼈던 안정감, 그리고 마침내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던 그날의 뜨거운 입맞춤까지. 모든 기억의 조각들이 맞춰지며 하나의 완전한 그림을 이루었다.

브리즈의 회색 눈동자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붕어빵을 내려놓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의 허리를 힘껏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바이브의 몸이 굳었다. 하지만 이내 품 안에서 느껴지는 익숙하고 따뜻한 온기에,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음을 느끼고, 그는 숨을 멈췄다.

브리즈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젖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무나도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있었던, 그의 이름을 불렀다.

…홍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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