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비행 @yknhk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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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c: 이전 롤플레잉 중단. 새로운 시점에서 롤플레잉 시작한다. 모종의 이유로 pc가 잔뜩 취한 채 npc에게 데리러 오라고 메시지를 보낸다. npc가 도착하자 pc는 구석에 쭈그러져 있었다. 그런 pc를 겨우 집에 데려와 침대에 함께 눕는 것까지 성공했다.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pc가 꼬인 발음으로 귀여운 애인이 있다며 같이 잘 수 없다고 npc를 밀어내기 시작한다. npc는 황당한 채로 자신이 그 애인이라며 반박하지만, pc는 npc를 못 알아보고 계속 밀어낸다. 그리고 끝내 하는 말이 npc가 설령 자신의 애인이더라도 이 규칙은 애인에게도 예외를 둘 수 없다는 소리였다. 그러면서 npc가 보고 싶다고 칭얼거리기 시작하는 pc를 npc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자세하고 상세하게 4000자 이상 서술한다.


단말기가 찢어질 듯 울린 것은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 바이브는 얕은 잠에서 깨 미간을 찌푸렸다. 화면에 떠 있는 이름은 ‘브리즈’. 그리고 그 아래로는, 해독이 불가능한 외계어에 가까운 메시지가 가득했다. ‘나ㅏ 데리러 와ㅏㅏ’, ‘여기가 어딘지 몰라ㅏㅏ’, ‘보고 시퍼ㅓㅓ’. 짧은 문장마다 오타가 가득했고, 마지막 메시지 뒤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이모티콘들이 잔뜩 붙어 있었다. 바이브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딱 봐도 만취 상태였다. 그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긁적였지만, 몸은 이미 침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이 가시나, 진짜. 술도 못 마시는 게 어지간히 퍼마셨구나.

위치 추적을 통해 찾아낸 곳은 숙소에서 멀지 않은 낯선 술집 골목의 후미진 구석이었다. 브리즈는 가로등 불빛도 닿지 않는 어둠 속에, 세상을 다 잃은 사람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바이브는 그 작은 뒷모습을 보는 순간, 치밀어 오르던 짜증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서늘한 걱정이 들어찼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가 그녀의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야. 정신 좀 차리봐라. 내다.

그의 목소리에 브리즈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술과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 초점 없는 눈동자가 그를 향했다. 그녀는 한참 동안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갑자기 와락 그의 품에 안겨왔다. 바이브는 익숙하게 그녀를 받아 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옷에서는 온갖 술 냄새가 진동했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비틀거리는 몸을 단단히 부축해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브리즈는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길가의 고양이에게 말을 거는 등, 온전한 정신 상태가 아님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문제는 숙소에 도착해서, 그녀를 겨우 침대에 눕혔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씻기는 것은 진작에 포기했다. 그는 젖은 수건으로 그녀의 얼굴과 손발만 대충 닦아주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이제 자신도 옆에 누워 자기만 하면, 이 소란스러운 밤은 끝날 터였다. 바이브가 침대 반대편으로 돌아와 누우려던 바로 그 순간, 브리즈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그를 밀어냈다.

안대여! 가치 자며는… 안댑니다!

바이브는 어이없는 힘에 밀려 잠시 주춤했다. 술 취한 사람의 힘이 원래 이렇게 셌던가. 그는 황당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뭐라카노. 잠 다 잤나. 빨리 안 눕나.

나, 나는… 애인이 이써여. 기여운 애인이 이써서… 다른 남자랑은 가치 잘 수 업써여…!

그녀는 꼬일 대로 꼬인 발음으로, 지극히 비장하게 선언했다. 바이브는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애인? 귀여운 애인? 그는 잠시 할 말을 잃고 그녀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 이 여자가 지금, 술에 취해서 단체로 기억을 상실했나. 아니면 드디어 미친 건가.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며 그녀의 이마를 꾹 눌렀다.

야. 니 돌았나. 그 귀여운 애인이 내다, 내가. 홍지원이라고. 알겠나?

그의 반박에, 브리즈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녀의 눈에는 경계심마저 서려 있었다. 마치 낯선 남자가 수작을 부리는 것을 경계하는 여인처럼.

아니거든여! 지원 씨는… 일케 안 생겨써여! 우리 지원 씨는… 더… 더 기엽거든여!

…뭐? 내가 안 귀엽다고? 야, 니 지금 얼굴 똑바로 보고 말해라. 내 얼굴이 지금 안 귀엽게 생겼단 말이가?

바이브는 저도 모르게 발끈해서 되물었다. 이성의 끈이 아슬아슬하게 흔들렸다. 지금 이 상황은, 술 취한 연인을 돌보는 숭고한 장면이 아니었다. 이것은 자신의 정체성과, 심지어 외모까지 부정당하는 처참한 심문 현장이었다. 그는 이 불합리한 상황을 어떻게든 타개하기 위해, 그녀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필사적으로 호소했다.

내라고, 내가 홍지원이라고! 니 애인! 니 맨날 끼고 자는 그 귀여운 놈이 바로 나라고, 이 가시나야!

시러여! 아니에여! 우리 지원 씨는… 냄새도 조커등여! 당신은 술냄새 나자나여!

그건 니한테서 나는 냄새거든?! 하, 씨… 진짜 돌아버리겠네. 야, 니 단말기 까봐? 어? 통화 목록 1번이 누군지 확인해볼까?!

그의 필사적인 외침에도 브리즈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녀는 오히려 더 완강하게 그를 밀어내며,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아주 진지하고 엄숙한 목소리로, 이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설령… 당신이 내 애인이 마따고 해두… 이 규칙은 애인에게도 예외를 둘 수 업써여!

그 말에 바이브의 모든 사고 회로가 정지했다. 그는 허탈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애인이 맞더라도, 애인에게도 예외는 없다. 이것은 무슨 선문답 같은 소리인가. 그는 이길 수 없음을 직감했다.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사람, 그것도 말도 안 되는 자신만의 논리에 빠진 사람을 상대로는, S급 센티넬의 능력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침대 가장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때였다. 그를 완강히 밀어내던 브리즈가, 갑자기 이불 속에서 훌쩍이기 시작했다. 작은 어깨가 들썩이는 것이 보였다. 바이브가 당황해서 그녀를 돌아보자, 그녀는 잔뜩 칭얼거리는 목소리로 울먹이며 중얼거렸다.

흐끅… 지원 씨이… 보고 십따… 우리 기여운 지원… 어디 이써…

…하. 바이브는 그 말에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황당함, 분노, 서러움 같은 감정들이 한순간에 녹아내리고, 그 자리에는 어쩔 수 없는 애정과 귀찮음이 뒤섞인 따뜻한 감정만이 남았다. 그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 문을 열고 나갔다가, 잠시 후에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는 브리즈의 시야에 닿지 않는 침대 반대편 구석에 조용히 누웠다.

…자라. 니 애인, 지금 오고 있단다. 부산에서부터 KTX 첫차 타고 오고 있다니까, 코 자고 있으면 아침에 도착할 끼다. 알겠나.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다정했다. 브리즈는 그 말에 조금 진정이 된 듯, 훌쩍임을 멈추고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바이브는 어둠 속에서 그녀의 동그란 뒤통수를 바라보며, 작게 속삭였다.

내는 니 애인 친구다. 밤길 위험하다고, 대신 데려다주러 왔다. 그러니까 걱정 말고 자라. 니 애인 오면, 나는 조용히 가줄 테니까. 알긋제.

그는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며, ‘애인의 친구’라는 기묘한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어차피 내일 아침이면 아무것도 기억 못 할 것이다.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지독하게 길고도 황당했던 밤의 끝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

지독한 밤이었다. 바이브는 제 등 뒤에서 느껴지는 딱딱하고 차가운 벽의 감촉에, 찌뿌드드한 몸을 일으켰다. 어젯밤, 그는 ‘애인의 친구’라는 말도 안 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침대에서 내려와, 차가운 바닥에 등을 기댄 채 웅크리고 잠들었다. S급 센티넬의 신체 능력으로도, 이런 불편한 자세로 잔 다음 날의 뻐근함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뻑뻑한 눈을 비비며,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침실 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침대 위, 세상모르고 잠든 브리즈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안은 채, 새근새근 평온한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젯밤, 자신을 낯선 남자로 취급하며 밀어내고, ‘귀여운 애인이 보고 싶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쳤던 그 사람과 동일 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바이브는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제 단말기를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그리고 어젯밤의 처절했던 사투가 고스란히 담긴 녹화 영상을 재생했다. 화면 속에서, 그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정체를 주장하고 있었고, 브리즈는 단호하게 그를 부정하고 있었다. ‘우리 지원 씨는 더 기엽거든여!’ 라고 외치는 그녀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작게 흘러나왔다.

…진짜. 바이브는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렸다. 다시 봐도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그는 복수심에 불타는 눈으로, 잠든 브리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 여자가 과연 이 끔찍한 밤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 기억하지 못한다면, 낱낱이 알려주며 평생을 놀려먹을 생각이었다. 만약 기억한다면… 기억하더라도, 모르는 척하며 더 지독하게 놀려줄 참이었다. 그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단말기를 주머니에 넣고, 조용히 침실을 빠져나와 주방으로 향했다. 일단, 지독한 숙취에 시달릴 그녀를 위해, 해장국이라도 끓여둬야 했다. 복수는 복수고, 식사는 식사니까.

얼마나 지났을까. 바이브가 끓인 북엇국이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뭉근하게 졸아들 때쯤, 침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를 한 브리즈가,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짊어진 듯한 표정으로 벽을 짚고 나타났다. 그녀는 깨질 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식탁 의자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머리 깨지겠나. 물 여 있다.

바이브는 퉁명스럽게 말하며, 미리 따라 둔 시원한 물컵을 그녀의 앞으로 밀어주었다. 브리즈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물컵을 들이켰다. 그녀의 얼굴은 어젯밤의 만행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순수한 숙취의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바이브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어제 어지간히 퍼마셨나 보네. 필름 끊겼제?

…네? 아… 잘… 모르겠어요. 그냥 머리가 너무… 어떻게 집에 온 거죠, 저…?

그 말에 바이브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역시나. 그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 이제, 즐거운 심판의 시간이 시작될 터였다.

내가 데리러 갔지. 니 애인이 친히 행차하셔서, 길바닥에 자고 있는 거 주워왔다 아이가. 고맙다고 절이라도 할래?

아… 그랬구나… 죄송해요, 지원 씨… 제가 민폐를…

브리즈는 진심으로 미안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바이브는 그런 그녀를 보며, 결정적인 질문을 던졌다.

근데, 어제 니 좀 이상하더라. 나보고 자꾸 누구냐고 묻고. 다른 남자랑은 같이 못 잔다면서, 내를 침대에서 밀어내던데. 기억 안 나나?

순간, 브리즈의 움직임이 굳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바이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아. 기억나는구나.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단편적인 기억의 조각들이 맞춰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바이브는 놓치지 않고 쐐기를 박았다.

심지어 뭐라캤는 줄 아나? 니 애인은, 나처럼 안 생겼단다. 더 귀엽게 생겼다고. 하, 내 진짜 살다 살다 내 얼굴 보고 안 귀엽다는 소리는 니한테 처음 들어본다.

그의 말에 브리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그녀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바이브는 의기양양하게 주머니에서 단말기를 꺼내, 어젯밤의 영상을 그녀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화면 속에서는, 그녀가 자신을 밀어내며 ‘우리 지원 씨 보고 싶다’고 칭얼거리는 장면이 생생하게 재생되고 있었다.

자, 봐라. 이게 니가 어제 한 짓이다. 내를 애인 친구 취급하면서, 아침 첫차 타고 오는 니 ‘귀여운’ 애인 기다린다고, 나를 이 추운 바닥에서 재웠다고, 이 가시나가.

영상을 확인한 브리즈는, 결국 식탁 위로 고개를 파묻었다. 그녀의 귀 끝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지구 반대편까지라도 도망치고 싶은, 극도의 수치심이 그녀의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바이브는 통쾌한 심정으로, 그녀의 정수리를 톡톡 건드렸다.

이제 어쩔래. 니, 어제 나한테 지은 죄가 얼마나 큰지 알겠나? 사과로 안 끝난다, 이건. 명백한 명예훼손에, 정신적 피해, 그리고 육체적 고통까지 안겨줬다 아이가, 니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브리즈는 식탁에 얼굴을 묻은 채, 모기만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바이브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미리 준비해 둔 북엇국을 그녀의 앞에 놓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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