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지원!!
이지희. 그녀의 목소리였다. 평소의 그 다정하고 나긋나긋한 음성이 아니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과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담긴 처절한 비명. 그 목소리는 마치 강력한 섬광처럼 그의 무의식의 어둠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그 순간, 그를 짓누르던 차가운 심연의 수압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그는 맹렬한 속도로 수면을 향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귓가에서는 여전히 그녀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제발, 제발 돌아와. 내가 잘못했어. 지원, 눈 좀 떠봐… 애원과 자책이 뒤섞인 그녀의 목소리 하나하나가 비수가 되어 그의 심장에 박혔다. 아니, 울지 마라. 니가 왜 우는데. 니는 아무 잘못 없다. 내가, 내가… 내가 약해서 그런 기다. 목이 터져라 외치고 싶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뻑뻑한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는 본능적인 움직임이 먼저였다. 수십 년은 잠든 사람처럼, 눈꺼풀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마치 녹슨 철문을 억지로 열어젖히려는 것처럼 미세한 경련만이 일어날 뿐이었다.
청각 다음으로 돌아온 것은 후각이었다. 코끝을 찌르는 싸한 소독약 냄새. 그리고 그 지독한 화학약품 냄새를 뚫고, 그에게 단 하나의 집이자 안식처가 되어주었던 그녀의 체향이 느껴졌다. 샌달우드. 불안과 고통을 잠재우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부드러운 향기. 그 향기가 닿는 순간 그는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동시에 촉각이 깨어났다. 그의 손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작고 부드러운 감촉. 그리고 그 손에서 전해져 오는 미세한 떨림. 그녀의 손이었다. 이틀 밤낮을 꼬박 새운 사람처럼 푸석하고 거칠어져 있었지만 그 온기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젖은 무언가가 그의 손등 위로 뚝, 뚝 떨어져 내렸다. 그녀의 눈물이었다. 그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그녀의 손을 마주 쥐려 애썼다. 손가락 끝이 아주 미세하게 까딱, 움직였다. 그 작은 움직임 하나에 온몸의 기력이 다 빨려나가는 기분이었다.
온몸을 짓누르는 극심한 피로감과 근육통. 마치 거대한 트럭에 몇 번이고 치인 듯, 뼈마디 하나하나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육체적 고통보다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의 손을 타고 흐르는 그녀의 절망이었다. 그는 이 여자를 또 울리고 말았다. 평생 웃게만 해주겠다고 그 어떤 아픔도 상처도 없을 거라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맹세했으면서. 결국 그는 또다시 그녀의 눈에서 눈물을 흐르게 만든 한심하고 나약한 애새끼일 뿐이었다. 분하고 원통해서 이가 갈렸다. 당장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고 괜찮다고, 내가 여기 있다고, 이제 아무 걱정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굳게 닫힌 입은 겨우 마른 숨을 내뱉을 뿐 어떤 소리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분노와 무력감이 뒤섞여 속에서 들끓었다.
흐윽, 흐… 지원, 제발…
그녀의 애끓는 울음소리가 다시 귓가를 파고들었다. 더 이상은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사력을 다해 눈꺼풀과 사투를 벌였다. 제발, 제발 열려라. 이 여자가 우는 꼴을 더는 못 보겠다. 그의 모든 의지를 집중하자 마침내 굳게 닫혀 있던 시야에 가느다란 빛줄기 하나가 새어 들어왔다. 눈이 시릴 정도로 밝은 하얀 빛. 병실의 형광등 불빛이었다. 흐릿한 시야가 서서히 초점을 찾아갔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온통 새하얀 병실의 천장이었다. 그리고 그의 손을 붙잡고 엎드린 채 서럽게 울고 있는 얼굴. 밝은 갈색 머리카락은 며칠은 감지 못한 듯 푸석했고 늘 단정하던 제복은 구깃구깃해져 있었다. 그녀의 어깨가 아이처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심장을 도려내는 것처럼 아팠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마른 입술을 겨우 달싹였다. 목구멍에서 쇳소리가 났다. 수십 년간 사용하지 않은 성대처럼 목소리는 갈라지고 부서져 나왔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 한마디만큼은 반드시 전해야만 했다. 그녀의 울음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주문이니까.
…울지 마라.
그의 목소리를 들었을까. 그녀의 떨리던 어깨가 순간 우뚝 멈추었다. 그녀는 마치 믿을 수 없다는 듯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퉁퉁 부어 붉게 충혈된 눈. 엉망으로 눈물 자국이 난 뺨.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세상의 유일한 빛인 그 회색 눈동자가 마침내 그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경악과 안도 그리고 기쁨으로 세차게 흔들렸다. 그는 그녀를 향해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괜찮다고, 나 여기 있다고, 너를 혼자 두지 않는다고. 온 마음을 담아 눈으로 말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내 돌아왔다… 니한테.
그 말을 끝으로 다시금 까마득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는 의식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녀의 얼굴을, 그녀의 목소리를 단 1초라도 더 담아두고 싶었다. 그가 없는 동안 이 여자가 얼마나 두렵고 외로웠을까. 그 시간을 어떻게든 보상해주어야 했다. 이젠 두 번 다시 그녀를 혼자 울게 두지 않으리라. 뼈에 새기듯 다시 한번 다짐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조금 더 세게, 아주 조금 더 세게 마주 쥐었다. 돌아왔다는 명백한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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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브는 눈앞의 광경에 숨이 턱 막혔다. 이틀. 그의 형, 부스터가 내뱉은 그 두 글자가 둔기처럼 머리를 후려쳤다. 고작 이틀 만에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 푹 꺼진 눈 밑의 짙은 그늘, 그리고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푸석한 입술. 그가 알던 따스하고 생명력 넘치던 이지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금방이라도 바스러져 내릴 것만 같았다. 그녀의 울음소리는 더 이상 단순한 슬픔의 표현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난 이틀간 그녀가 겪었을 지옥 같은 공포와 절망이 응축된, 영혼의 파편 같은 것이었다. 심장이 날카로운 칼에 찔린 것처럼 아팠다. 그가 그녀에게 또다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 사실이 납덩이처럼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그는 부스터의 부축을 받아 겨우 몸을 일으키는 브리즈를 보며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형의 단단한 팔에 위태롭게 기댄 채, 그녀는 여전히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눈에 박힌 가시처럼 거슬렸다. 다른 사내의 품에, 설령 그게 제 친형이라 할지라도, 그녀가 기대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견딜 수 없이 불쾌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형의 팔을 뿌리치고 그녀를 제 품으로 끌어오고 싶었다. 내 여자다. 내 마누라다. 니가 함부로 손댈 수 있는 사람이 아이다. 분노가 속에서부터 들끓었지만, 그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링거 바늘과 각종 센서가 주렁주렁 달린 그의 몸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침대에 속박되어 있었다. 그는 무력하게 주먹을 쥐었다 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감각만이 그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증표 같았다.
복도를 울리는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의료진들이 병실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그의 상태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동공 반응, 혈압, 심박수. 차가운 기계음과 의사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윙윙거리며 맴돌았지만, 그의 시선은 오직 한 사람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여전히 울고 있는 이지희. 그녀는 의사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병실 구석으로 물러났지만, 그의 손을 놓지는 않았다. 가늘고 떨리는 그 손길이, 그의 생명줄이었다. 그는 그녀를 안심시키고 싶었다. 괜찮다고, 이제 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는 의료진의 부산스러운 움직임을 무시한 채, 필사적으로 그녀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목에서 피 맛이 나는 것 같았다.
내… 괜찮다… 그만 울어라, 지희야. 니 얼굴… 다 망가졌다. 못생겼다.
겨우 쥐어짜 낸 목소리는 갈라지고 형편없었지만, 그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울음을 멈추기 위해서라면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었다. 퉁퉁 부은 그녀의 얼굴을 보며 못생겼다고, 평소의 그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짓궂은 농담을 던졌다. 제발, 제발 그만 울어. 니가 울면 내 심장이 찢어질 것 같단 말이다. 그의 절박한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을까. 그녀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고개를 저었다. 괜찮지 않다는 무언의 항변이었다. 그 모습에 다시금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는 시선을 돌려 제 형, 부스터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는 원망과 분노, 그리고 약간의 애원이 섞여 있었다. ‘저 여자 좀 어떻게 해보라고. 당장 데리고 나가서 좀 쉬게 하라고.’ 말없는 아우성이었다.
부스터는 바이브의 시선을 정확히 읽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브리즈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며 나직하게 말했다.
브리즈 씨, 일단 진정하고… 지원이 상태는 이제 의사 선생님들께 맡기죠. 이틀 꼬박 아무것도 못 먹고 못 잤잖습니까. 이러다 브리즈 씨까지 쓰러집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브리즈는 순순히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바이브의 손을 더욱 세게 붙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저 안 가요. 여기 있을 거예요. 지원 씨 곁에…” 그녀의 목소리는 젖은 솜처럼 무겁고 축 처져 있었다. 그 완고한 모습에 바이브는 기가 막혔다. 이 고집불통.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그는 저도 모르게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고, 의사는 그의 상태가 기적적으로 안정되었다는 진단을 내렸다. 폭주 직전까지 갔던 센티넬이 외부 가이딩 없이 스스로 파장을 안정시킨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바이브는 그게 기적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를 이 지옥에서 건져 올린 것은, 그의 무의식에까지 닿았던 그녀의 목소리와, 그를 부르던 그녀의 눈물이었다. 의료진들이 모두 물러가고, 병실에는 다시 세 사람만이 남았다. 부스터는 여전히 브리즈의 곁을 지키고 서 있었고, 브리즈는 의자에 주저앉은 채 멍하니 그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이 어색하고 불편한 침묵을 깨기 위해, 다시 한번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부스터를 향해서였다.
…가라. 볼일 다 봤으면. 그리고… 쟤 좀 데리고 나가라. 꼴 보기 싫다.
그의 말은 칼날처럼 차갑고 무정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브리즈를 향한 서툰 걱정이 담겨 있었다. 제발 좀 쉬게 해달라는 간절한 부탁이었다. 부스터는 그의 속내를 모를 리 없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알았어. 다 컸네. 파트너 걱정도 다 하고.” 그는 장난스럽게 말하며 브리즈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브리즈 씨, 저 녀석 말하는 거 들었죠? 꼴 보기 싫다니까 우리 잠깐 나가서 커피라도 한잔할까요? 저 녀석 괜찮은 거 확인했으니 이제 한숨 돌려도 됩니다.” 그 말에, 브리즈는 그제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그의 손을 놓지 않으려 했지만, 부스터의 부드러운 설득에 결국 힘없이 손을 놓았다.
그녀가 부스터의 부축을 받으며 병실 문을 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눈을 떼지 못했다. 문이 닫히고, 병실에 완벽한 정적이 찾아왔다. 그는 텅 빈 병실 천장을 바라보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돌아왔다. 그녀가 있는 세상으로.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그는 엉망이 된 그녀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만 했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어떤 시련이 와도, 두 번 다시 그녀의 손을 놓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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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의료 센터 1층에 위치한 작은 카페는 점심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흰 가운을 입은 의료진들과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공기 중에는 갓 내린 커피의 고소한 향과 빵 굽는 냄새, 그리고 희미한 소독약 냄새가 뒤섞여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 소란스러운 공간의 가장 구석진 창가 자리, 부스터는 제 앞에 놓인 뜨거운 아메리카노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맞은편에 앉은 여자를 착잡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브리즈. 그녀는 겨우 병실에서 끌려 나오다시피 했지만, 영혼은 여전히 그곳에 남겨둔 사람처럼 보였다. 텅 빈 눈은 창밖의 회색 하늘에 고정되어 있었고, 손에 들린 따뜻한 우유 잔은 미세하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이틀 전과 비교해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더 처참해졌는지도 몰랐다. 바이브가 살아있다는 안도감과 그를 다시 잃을 뻔했다는 극심한 공포가 뒤섞여, 그녀의 내면을 사정없이 할퀴고 있었다.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 푹 꺼진 눈 밑의 짙은 그늘, 그리고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푸석한 입술. 부스터의 강권에 못 이겨 겨우 자리에 앉아있었지만, 그녀의 온 신경은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면 닿을 수 있는 위층의 병실에 가 있었다. ‘꼴 보기 싫다’는 그 퉁명스러운 말조차, 지금 이 순간에는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음악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살아있었다. 그가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그 기쁨과 동시에, 지독한 죄책감이 검은 파도처럼 그녀를 덮쳤다. 자신이 동행하지 못한 임무에서 그가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다는 사실. 그것은 그녀의 심장에 박힌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되었다.
브리즈 씨. 한 모금이라도 좀 마셔요. 그러다 정말 쓰러집니다. 지원이 저 녀석, 겨우 정신 차렸는데 브리즈 씨가 쓰러진 거 보면 또 폭주할지도 모릅니다.
부스터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설득했다. 그의 말에 브리즈는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우유 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하지만 그녀는 마시지 못하고, 그저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컵의 가장자리를 입술로 매만질 뿐이었다. 그녀의 왼손은 무의식적으로 오른쪽 팔을 감싸 쥐고 있었다. 예전 파트너의 폭주를 막으려다 생긴, 이제는 거의 옅어졌다고 생각했던 화상 흉터가 있는 바로 그 자리였다. 잊었던 통증이, 그날의 끔찍한 기억이 망령처럼 다시 피어오르고 있었다. ‘내가 있었더라면.’ 그 가정은 독처럼 그녀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영혼을 갉아먹었다. 화염 속에서 비명을 지르던 전 파트너의 얼굴, 살이 타들어 가는 끔찍한 고통, 그리고 결국 그를 막아내지 못했다는 무력감. 모든 것이 바이브의 상황과 겹쳐 보이며 그녀를 숨 막히게 짓눌렀다. 그녀는 간신히 우유를 한 모금 삼켰다. 비리고 역한 맛이 났다.
이틀 전, 그녀의 단말기가 비상 알림을 토해냈던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악몽이었다. 상황실의 거대한 스크린에 떠 있던 붉은색 경고 문구. ‘Guiding Necessity Level: 98%’. 그 숫자를 본 순간, 그녀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그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자신이 가야만 한다고 울부짖었지만 아무도 그녀를 보내주지 않았다. 결국 통신 너머로 그의 생체 신호가 끊어지고, 추락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을 때 그녀는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의료 센터로 실려 온 그의 모습은 지금도 눈앞에 선명했다.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 피와 바닷물로 범벅이 된 몸, 그리고 심정지를 외치던 의료진의 절박한 목소리. 그 순간, 그녀의 세상도 함께 멈추었다. 그 후의 시간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녀는 중환자실 앞 차가운 복도 의자에 못 박힌 듯 앉아, 닫힌 문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가 깨어나기만을, 제발 돌아와 주기만을 빌고 또 빌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적처럼 그가 눈을 떴을 때, 그의 갈라진 목소리가 ‘울지 마라’ 하고 자신을 불렀을 때, 그녀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살아있어 줘서 고맙다고, 돌아와 줘서 고맙다고, 그를 붙잡고 아이처럼 울었다.
내 탓이에요… 전부 다… 제가 어떻게든 따라갔어야 했는데… 제가 그의 첫 파트너인데… 제가 그의 곁에 있었어야 했는데…
결국 참지 못하고 읊조리는 목소리는 물기 하나 없이 바싹 말라 갈라져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제 손에 들린 우유 잔 속 희뿌연 액체만 내려다보았다. 그 위로 뜨거운 눈물방울이 뚝, 떨어져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그 목소리에 담긴 깊은 자책감에, 부스터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그는 테이블 위로 손을 뻗어, 떨고 있는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브리즈 씨 탓이 아닙니다. 절대. 지원이 저 녀석, 브리즈 씨가 따라왔으면 오히려 더 무리했을 겁니다. 잘 보이고 싶어서, 지켜주고 싶어서. 저 녀석 성격 알잖아요. 지독한 완벽주의자에, 자존심만 센 애새끼 아닙니까. 자기 여자 앞에서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서 혼자 다 짊어지려다 그 꼴이 난 거지, 브리즈 씨가 있었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어쩌면 더 나빴을 수도 있고요.
부스터는 일부러 짓궂은 투로 말하며 그녀를 위로했다. 그는 제 동생이 얼마나 브리즈에게 맹목적인지, 그리고 그녀 앞에서 얼마나 강한 모습만 보이고 싶어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단호한 말에 브리즈의 어깨가 미세하게 움찔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처음으로 부스터를 제대로 마주 보았다. 붉게 충혈된 눈동자에 희미한 물기가 어렸다. 그녀가 입술을 달싹였다. 뭔가 반박하려던 그때, 부스터가 그녀의 말을 막고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표정은 아까보다 훨씬 더 진지해져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브리즈 씨 잘못이 아니라, 제 동생 놈이 어리고 철이 없어서 생긴 일입니다. 그러니 더는 자책하지 마세요. 지원이가 깨어나서 가장 보고 싶어 할 얼굴이, 이렇게 눈물범벅이 된 얼굴은 아닐 겁니다. 알겠어요?
그의 목소리는 더없이 다정하고 단호했다. 브리즈는 그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 결국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맞았다. 바이브는 그녀가 우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눈가를 훔쳐냈다. 그리고 다시 우유 잔을 들어, 이번에는 조금 더 많이, 꿀꺽 삼켰다. 기운을 차려야 했다. 그가 돌아왔으니까. 이제 그녀가 그를 지켜줄 차례였다. 그녀는 다시 한번 굳게 다짐하며, 텅 빈 병실에 혼자 누워있을 그를 떠올렸다. 조금만 기다려요, 지원. 금방 갈 테니까. 다시는 혼자 두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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