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비행 @yknhk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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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의 공기는 평소와 달리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제의 평온했던 햇살은 간데없고, 형광등의 차가운 빛만이 하얀 시트 위에 앉은 브리즈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그녀의 곁에는 바이브가, 마치 성벽처럼 미동도 없이 서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주위로, 흰 가운을 입은 의료진과 유독 눈에 띄는 한 남자가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바이브의 셋째 형, 부스터였다. 아크의 S급 불 속성 가이드인 그는, 이번 테스트의 보조 및 감독 역할로 이 자리에 와 있었다.

바이브는 제 친형의 존재가 지독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이후, 굳이 여기까지 찾아온 저의가 뻔했다. 걱정을 빙자한 간섭, 그리고 자신을 아직도 어린애 취급하는 그 능글맞은 태도. 그는 부스터를 향한 짜증을 애써 억누르며, 모든 신경을 제 앞에 앉은 브리즈에게로 집중했다. 그녀의 손가락 마디마디에 차가운 금속 집게들이 끼워지는 것을 볼 때마다, 저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마치 제 살이 뜯겨나가는 듯한 불쾌감이었다.

브리즈는 긴장한 듯 마른 입술을 잘게 깨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바이브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걷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제 겨우 제 발로 몇 걸음 뗀 사람한테, 이게 무슨 짓인가. 하지만 이것이 그녀가 일상으로, 그리고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임을 알기에, 그는 터져 나오려는 불만을 억지로 삼켰다. 대신, 그는 보이지 않는 바람의 막을 펼쳐, 그녀를 둘러싼 공기를 가장 안정적이고 부드러운 상태로 유지했다. 그가 지금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응원이었다.

……으으.

그녀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이내 그녀가 눈을 감고, 아주 조심스럽게, 제 안의 힘을 꺼내기 시작했다. 바이브는 느낄 수 있었다. 고요하던 병실의 공기가 아주 미세하게,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술렁이기 시작하는 것을. 그것은 폭풍도, 돌풍도 아니었다. 그저 잠든 아기의 숨결처럼, 부드럽고 미약한 산들바람. 브리즈, 그녀 자체인 바람이었다. 파장 측정기의 모니터에 그려진 평탄한 그래프가, 희미한 산처럼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숫자가 조금씩, 아주 더디게 올라갔다.

그 순간, 그녀의 턱을 타고 땀 한 방울이 툭, 하고 떨어져 내렸다.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무리하고 있었다. 바이브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저 작은 몸으로, 텅 비었던 힘을 다시 끌어모으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저 모든 것을 멈추고, 그녀를 품에 안고 싶었다. 그가 주먹을 꽉 쥐는 순간, 옆에 서 있던 부스터가 먼저 나섰다.

거기까지. 수고했어, 브리즈 씨.

부스터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테스트 중단을 선언했다. 의료진들이 재빨리 움직여 그녀의 몸에서 측정기들을 떼어냈다. 바이브는 그제야 멈췄던 숨을 내쉬며, 곧장 그녀에게 다가가 땀으로 축축한 등을 가만히 쓸어주었다. 부스터는 복잡한 데이터가 떠 있는 모니터를 잠시 들여다보더니, 안심시키려는 듯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말했다.

파장 자체는 안정적이네. 힘이 돌아오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긍정적인 신호야. 역시 우리 막내가 옆에 붙어 있어서 그런가?

그가 장난스럽게 덧붙이며 바이브를 쳐다보았다. 바이브는 그 시선을 차갑게 무시한 채, 오직 브리즈의 상태를 살폈다. 탈진한 듯 색색거리는 그녀의 숨소리가 그의 심장을 날카롭게 찔렀다. 그는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귀 뒤로 넘겨주며, 오직 그녀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잘했다. 이제 됐다. 다 끝났으니까, 좀 쉬어라.

그의 목소리에는 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깊은 안도감과, 애틋한 다정함이 묻어 있었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아 제 품에 기대게 했다. 그녀의 체온, 그녀의 숨결, 미약하게나마 다시 피어난 그녀의 바람. 그 모든 것이 그에게는 세상의 그 어떤 데이터보다도 확실한, 그녀가 돌아오고 있다는 증거였다.

 

---

브리즈가 쌔근쌔근,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파장을 무리하게 끌어올린 탓에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간 데다, 온갖 긴장과 민망함이 뒤섞인 감정 소모까지 더해졌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바이브는 그녀가 깊은 잠에 빠져든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내내 그녀의 이마에 닿아 있던 제 손을 조심스럽게 거두었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그의 얼굴선이, 그녀의 평온한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는 순간 눈 녹듯 부드럽게 풀렸다. 세상 모든 것을 향해 날을 세우던 경계심도, 오직 이 존재 앞에서만은 무장 해제되고 마는 것이다.

그는 의자를 끌어다 침대 옆에 앉아, 한참 동안 그녀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살짝 벌어진 입술, 고른 숨결에 따라 작게 오르내리는 어깨,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 몇 올까지. 그 모든 것이 경이롭고 소중했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스칠 듯 말 듯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떼어주었다. 그 순간, 방 안에 아직 남아있던 또 다른 존재가 나지막이 정적을 깨뜨렸다.

완전히 푹 빠졌네, 우리 막내.

등 뒤에서 들려온 능글맞은 목소리에, 바이브의 어깨가 순간 굳었다. 잊고 있었다. 아직 저 인간이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부스터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이쪽을 흥미롭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놀림과 감탄, 그리고 아주 약간의 씁쓸함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바이브의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안 가고 뭐 하노. 볼일 다 끝났으면 꺼지라.

최대한 무심하고 퉁명스러운 목소리. 제 형을 향한 그의 오랜 방어기제였다. 하지만 부스터는 동생의 가시 돋친 말에 전혀 타격을 입지 않은 듯, 오히려 여유롭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쉬이, 목소리 낮춰. 아가씨 깬다. 그나저나 방금 그 연극, 아주 볼만하던데. '움직이지 마라, 파장 불안정하다?' 네 파장이 제일 불안정해 보이던 건 알고 있냐?

부스터는 바이브의 말을 흉내 내며 킬킬거렸다. 바이브의 얼굴이 홧홧 달아올랐다. 명백한 조롱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잠든 브리즈와 부스터 사이를 가로막듯 막아섰다. 제 영역을 침범당한 맹수처럼, 온몸으로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시끄럽다. 니는 내 파장 읽을 자격 없다.

자격이라. 하긴, 네 파장을 온전히 읽는 건 저 아가씨뿐이겠지.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형으로서 조금 서운한데.

부스터는 팔짱을 푼 뒤, 천천히 바이브에게로 다가왔다. 190cm가 넘는 거구가 다가오자, 방 안이 더욱 비좁게 느껴졌다. 하지만 바이브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형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불꽃과 바람이, 소리 없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진심이냐.

부스터가 물었다. 방금 전까지의 능글맞은 태도는 온데간데없는, 진지한 목소리였다.

저 아가씨, 진심으로 네 옆에 둘 생각이야?

바이브는 대답 대신 코웃음을 쳤다. 뭘 당연한 걸 묻고 있나. 그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럼 니는, 내가 지금까지 장난이라도 친 것 같나.

그런 뜻이 아니잖아, 지원아. 저 아가씨, 평범한 가이드가 아니야. 너도 알지. 이전 파트너 일로 크게 다쳤던 거. 마음의 상처도 깊을 테고. 네가 단순히 소유욕이나 독점욕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란 뜻이다.

홍지원. 제 본명을 부르는 목소리에, 바이브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형이 진심으로 걱정할 때만 나오는 이름이었다.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잠든 브리즈의 얼굴을 힐끗 돌아보았다. 평온한 얼굴. 하지만 그 평온 아래 얼마나 많은 상처와 고통을 숨기고 있는지, 이제는 그도 알고 있었다.

바이브는 다시 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는 더 이상 반항적인 동생의 모습이 아니었다. 한 여자를 지키기로 결심한, 한 남자의 얼굴이 있었다.

내한테는, 저 사람이 세상이다. 내 세상 지키겠다는데, 니 허락 같은 거 필요 없다.

그의 단호한 선언에, 부스터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는 제 동생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늘 바람처럼 위태롭고, 혼자이길 자처하던 꼬맹이가. 이제는 제 세상을 지키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부스터의 입가에, 마침내 진심 어린 미소가 걸렸다.

…그래. 그 정도 각오는 해야 내 동생이지. 합격이다, 임마.

부스터는 바이브의 어깨를 툭, 하고 가볍게 쳤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병실 문으로 향했다. 문고리를 잡은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

나중에 정식으로 인사시켜라. 예비 제수씨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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