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비행 @yknhk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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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앗.

브리즈가 작게 터뜨린 비명은 놀람보다는 감탄에 가까웠다. 그녀의 팔이 반사적으로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고, 그 부드러운 무게감과 온기가 옷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바이브는 그녀가 겁먹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품에 안은 몸을 더욱 단단히 고정했다. 그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에 머물렀다. 밤의 불빛을 고스란히 담아 보석처럼 반짝이는 회색 눈동자. 그 안에 담긴 영도의 야경보다, 그 풍경을 담고 있는 그녀의 눈이 몇 배는 더 아름답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녀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따라, 바이브 역시 고개를 돌렸다. 발아래, 7월의 밤바다는 아직 잠들지 않은 채 활기로 넘실거렸다. 해변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의 불빛, 그리고 저 멀리 항구에서 외로이 깜빡이는 등대의 불빛까지. 그 모든 것이 그에게는 너무나 익숙하고 평범한 풍경이었지만, 그녀의 눈을 통해 보니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고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댄 채 속삭였다. ‘바다, 가까이에서도 보고 싶어요.’

그는 만족감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이것 봐라. 고작 이 정도에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그는 자신의 능력이, 자신의 세계가, 그녀에게 이토록 커다란 기쁨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오만한 쾌감을 느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었다. 이 밤의 끝까지라도, 그녀가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데려갈 수 있었다. 그는 일부러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가장하며, 그녀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까탈스럽기는. 이까지 올라왔드만, 이제는 내려가자고.

투덜거리는 말투였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고, 익숙한 샴푸 향과 그녀의 체향이 섞인 향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이 안정감, 이 평화.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 낸 고요 속에서 그녀와 함께 있는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마치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그는 더 이상 대답 없이, 행동으로 보여주기로 했다. 그녀가 보고 싶어 했던 그곳으로. 그는 부드럽게 하강 기류를 만들어내며, 아주 천천히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마치 깃털이 내려앉듯, 두 사람의 몸은 소리 없이 밤의 장막을 가르며 바다를 향해 미끄러져 내려갔다. 해수욕장의 소란스러운 인파를 지나, 그는 그녀의 시선이 머물렀던 작은 항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파도 소리가 점점 더 가깝게 들려오고, 비릿한 바다 내음이 한층 더 짙어졌다.

마침내, 그의 군화가 인적 없는 방파제 끝, 콘크리트 바닥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철썩, 하고 부서지는 파도 소리만이 두 사람을 감쌌다. 그는 그녀를 품에서 내려주었지만, 허리를 감싼 팔은 풀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녀가 균형을 잃을까, 아니면 파도가 그녀를 채어갈까 봐. 그는 자신의 몸으로 그녀를 단단히 감싸 보호했다. 눈앞에는 끝없이 펼쳐진 검은 바다와, 그 위로 길게 뻗은 달빛뿐이었다.

됐다. 이제 실컷 봐라. 니 전용 전망대다.

그가 무심한 척 턱짓으로 바다를 가리켰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바다가 아닌, 바다를 바라보는 그녀의 옆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 밤바람에 흩날리는 그녀의 머리카락, 감탄으로 살짝 벌어진 입술, 반짝이는 눈동자. 그 모든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그는 자신의 눈에, 그리고 마음에 그 모습을 새겨 넣었다. 그는 그녀의 허리를 감싼 팔을 풀어, 대신 그녀의 손을 찾아 단단히 깍지를 꼈다.

내 어릴 때, 답답하면 여기 와서 혼자 앉아있고 그랬다. 여기 앉아서 저 멀리 가는 배들 보믄, 왠지 내 속도 다 뚫리는 거 같았거든.

그는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속내를,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툭 던졌다. 자신의 가장 깊고 외로웠던 공간에, 그녀를 처음으로 들여놓는 순간이었다. 그는 깍지 낀 손에 힘을 주며,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 가만히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브리즈가 그의 손을 잡은 채, 방파제 끝으로 두어 걸음 더 나아갔다. 발끝에 검푸른 파도가 와서 부서지는 것이 아슬아슬하게 보였다. 그의 손을 잡지 않았다면 감히 서지 못했을 경계선이었다. 그녀의 시선은 먼 바다에, 그러나 모든 신경은 제 옆의 남자에게 향해 있었다. 그의 어린 시절. 프로필에 적힌 12살이라는 숫자. 그 앳된 나이의 소년이 감당해야 했을 각성과 아크에서의 삶. 그가 처음으로 제 속살을 조금 내비친 이 순간, 그녀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어릴 때, 바이브는 어떤 아이였어요?

순수하고, 정말로 궁금하다는 어조의 질문이었다. 그녀가 상상하는 ‘어린 바이브’는 아마 지금의 까칠함과는 다른, 조금은 더 평범하고 장난기 많은 소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한마디가, 잔잔하던 수면 위로 던져진 돌멩이처럼 바이브의 내면에 날카로운 파문을 일으켰다.

찰나의 정적. 방금 전까지 부드럽게 그녀의 손을 감싸고 있던 그의 손아귀에, 순간적으로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방파제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갑자기 고막을 찢을 듯이 커졌다. 부드럽게 불어오던 밤바람은 살을 에는 칼날처럼 느껴졌다. 그의 세상이, 그녀의 질문 하나에 급격히 온도를 잃고 있었다. ‘어떤 아이.’ 그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물었으나 끝내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천진난만한 꼬마의 모습이 아니었다. 엄마의 손을 놓쳐버렸던, 비명조차 삼켜버린 거대한 바람 속에서 홀로 눈을 떠야 했던 12살의 자신. 제어할 수 없는 힘에 울부짖으며 모든 것을 부수던 괴물. 가족의 얼굴을 볼 용기가 없어 스스로를 아크라는 감옥에 가두고, ‘바이브’라는 가면 뒤에 진짜 이름을 숨겨버린 겁쟁이. 그게 ‘어린 홍지원’이었다. 그는 입술을 짓씹었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비릿한 기억을 억지로 삼켜냈다.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아니었다. 절대로.

…그런 걸 뭐하러 묻노. 재미대가리 하나 없는 얘기다.

그의 목소리는 방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갑고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퉁명스러움을 가장한, 명백한 거절의 신호였다. 그는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놓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두 사람 사이에 방금 전까지는 없었던,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졌다. 그는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려 어두운 바다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일그러진 표정을 그녀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남들하고 똑같았다. 쌔가 빠지게 말 안 듣고, 맨날 사고 치고 댕기고. 바다에서 수영하고, 해 질 때까지 공 차고. 그런 거, 뭐.

그가 아무렇게나 말을 뱉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12살의 그날 이전까지는. 그러나 그 짧은 평화의 기억은 이제 너무나 멀어서,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몇 개의 단어로 요약해 던져버리며, 이 대화를 끝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녀의 앞에서 그는 늘 서툴렀다.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했지만, 그녀의 투명한 눈동자 앞에서는 모든 방어기제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자조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됐다. 가자. 여까지 와서 옛날얘기나 하고 있을라니까, 국밥 묵은 거 다 체할라 칸다.

그는 서둘러 등을 돌렸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물렀다가는, 그녀 앞에서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자신의 가장 깊은 상처를 공유하고 싶어 데려온 장소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다시 혼자가 되어야만 했다. 그는 그녀가 따라오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방파제를 따라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그녀를 혼자 두고 싶지 않으면서도, 지금 당장 그녀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의 넓은 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위태롭고 외로워 보였다.

빨리 안 오고 뭐하노. 진짜로 여기다 버리고 간다.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그가 어깨너머로 퉁명스럽게 소리쳤다. 어둠 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위태롭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제 본명을 부르는 순간, 마치 보이지 않는 실에 낚아채이기라도 한 듯, 성큼성큼 앞서가던 바이브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지원.’ 그 이름은 그가 아크에 들어오며 가장 먼저 버렸던 것, 가족과의 연결고리이자 동시에 자신의 가장 끔찍한 과오를 상기시키는 낙인이었다. 동료도, 상사도, 심지어 친형인 부스터조차 공적인 자리에서는 결코 부르지 않는 이름. 그 이름을, 지금 그녀가 불렀다. 심장을 맨손으로 움켜쥐는 듯한 섬뜩한 통증과 함께, 등 뒤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작고 다급한 발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미안하다는 말. 사과해야 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망친 것은, 이따위 질문 하나에 평정심을 잃고 멋대로 상처받아 도망치려 한 제 자신이었다. 그는 차마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지금 돌아서면, 분명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을 테니까. 애써 쌓아 올린 S급 센티넬 ‘바이브’의 가면이 산산조각 나는 꼴을, 그녀에게만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손바닥 안에서 땀이 축축하게 배어 나왔다. 제어되지 않는 감정의 파동이 공기의 흐름을 미세하게 뒤틀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이명이 울리고, 파도 소리가 철썩, 철썩, 심장을 때리는 소리처럼 불길하게 증폭됐다.

…누가 멋대로 이름 부르라켔나.

마침내 억지로 쥐어짜낸 목소리는, 스스로 듣기에도 형편없이 갈라지고 비틀려 있었다. 그는 여전히 등을 돌린 채, 어깨너머로 쏘아붙였다. 날카로운 가시를 세워 그녀의 접근을 막으려는, 필사적인 발악이었다. 그녀의 사과가, 그녀의 걱정이, 지금의 그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왔다. 그 다정함이 오히려 자신의 끔찍한 본질을 더욱 선명하게 비추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니는 내한테 미안해할 거 하나도 없다. 그냥… 내가 병신이라 그렇다. 시답잖은 질문 하나에 이 꼴 나는, 내가 그냥 등신 쪼다 같은 거라고. 그러니까 그냥…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냥 모른 척해달라’고, ‘나를 내버려 두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녀를 혼자 두고 싶지 않다는 모순된 욕심이,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가로등 불빛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마치 그를 비웃는 것처럼 일렁였다.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홧김에 발로 땅을 거칠게 찼다.

씨발… 진짜.

욕설과 함께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마침내,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브리즈와 시선을 마주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 저 표정을 짓게 만든 것이 자신이라는 사실이, 심장을 도려내는 것처럼 아팠다. 그는 그녀에게서 몇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멈춰 서서, 더는 다가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했다. 엉망이 된 감정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 그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내 얘기, 재미없다고 했잖아.

그가 간신히 다시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아까보다 조금 더 진정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위태로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자조적인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완벽하게 망쳐버린 밤이었다. 그녀에게 최고의 순간을 선물해주고 싶었는데, 결국 자신의 가장 밑바닥을 보여주고 말았다.

다시는… 내 옛날 일, 궁금해하지 마라. 니가 알던 그 홍지원이랑 지금 나는, 다른 사람이다. 그냥… 시끄럽고 예민하고 성질 더러운 S급 센티넬, 바이브로만 생각해라. 그게 니한테도, 내한테도 편하다. 알겠나.

그의 말은 부탁이자, 경고이자, 동시에 애원이었다. 그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등을 돌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망치듯 걷지 않았다. 그저 그녀보다 반 발짝 앞서, 느리게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녀가 따라올 수 있도록. 그러면서도 그녀의 얼굴을 마주할 용기는 없는, 그의 비겁하고도 절박한 거리였다.

그가 앞서 걷고, 그녀가 그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랐다. 방파제를 거의 다 빠져나올 때까지 이어진, 숨 막히는 침묵. 그 침묵을 깬 것은 그녀가 아니라, 그였다. 바이브는 더 이상 단 한 걸음도 뗄 수 없다는 듯,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가자. 여긴 이제 그만 보자. 그 말과 함께, 그는 몸을 돌려 그녀를 마주했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조금 전 국밥집을 나오며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고 그대로 밤하늘로 솟아올랐다.

돌아가는 길. 그의 품은 여전히 단단하고 안정적이었다. 그가 세심하게 조절하는 바람은 아까와 다름없이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칼을 스치고 뺨을 간질였다. 발아래 펼쳐진 부산의 야경 또한 변함없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하지만 모든 것이,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두 사람 사이를 채우던 달콤하고 들뜬 공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무겁고 서먹한 침묵만이 남았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고, 그녀 역시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속상함에, 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고개도 들지 못하고 가만히 얼굴을 파묻어 버릴 뿐이었다.

그녀의 작은 정수리가 그의 턱 끝에 닿았다. 부드러운 머리카락 사이로 옅게 풍겨오는, 익숙한 샴푸 향. 그리고 제 품에 완전히 몸을 맡긴 채 미동도 없는 이 작은 온기. 바이브는 제 품에 파고든 그녀를 내려다보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심장이 서걱서걱 잘려나가는 것 같았다. 제가 뱉은 날카로운 말들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정확히 자신의 심장을 꿰뚫는 기분이었다. 씨발, 홍지원. 진짜 병신 같은 새끼. 그는 속으로 끝없이 자신을 욕했다.

이 여자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서운할까? 아니면, 무서워졌을까? 변덕스럽고, 제멋대로 감정을 터뜨리고, 멋대로 선을 긋는 이런 놈이 질려버렸을까? 온갖 최악의 상상이 그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차라리 화를 내고, 따지고, 소리라도 질렀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아무 말 없이 그의 품으로 더 깊이 숨어들 뿐이었다. 그 모습이 그를 더욱 비참하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침묵은 그 어떤 비난보다도 아프게 그의 가슴을 후벼팠다.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그녀의 뒷머리를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그리고는 제 가슴에 묻혀 있던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려, 자신과 눈을 맞추게 했다. 엉망이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처럼 붉어진 눈가. 꾹 다물어 하얗게 질린 입술.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상처와 실망감을 마주하는 순간, 그는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울지 마라.

그가 잠겨 쉬어버린 목소리로 간신히 속삭였다. 그녀가 울면, 정말로 모든 게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애써 지키고 있던 마지막 이성까지도 전부. 그는 그녀의 젖은 눈가를 엄지손가락으로 서툴게 닦아주었다. 제 손길에 움찔, 하고 떨리는 그녀의 작은 어깨가 느껴졌다.

내가… 내가 잘못했다. 다 내 잘못이다.

결국, 항복이었다. 그는 다른 한쪽 팔로 그녀의 허리를 더욱 단단히 끌어안았다. 고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만큼,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놓을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를 놓아버리면, 영원히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내 같은 놈 뭐가 좋다고… 뭐가 궁금하다고. 니는 그냥, 아무것도 몰라도 된다. 그냥… 그냥 내 옆에만 있어주면 안 되나. 내가 잘할게. 다시는… 이런 좆같은 모습 안 보여줄게. 그러니까…

그의 말이, 끝을 맺지 못하고 허공에 흩어졌다. 그는 더 이상 말을 잇는 대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사과인지, 애원인지, 혹은 도망인지 모를 키스였다. 차갑게 식은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게 머금고, 달래듯 핥고, 조심스럽게 파고들었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제발 나를 떠나지 마라. 입술을 통해, 그는 말로 다 하지 못한 자신의 절박한 진심을 전했다. 그의 눈가에서도, 뜨거운 무언가가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울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엄지손가락 끝으로, 기어이 터져 나온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 작은 온기가, 마치 녹은 쇳물처럼 그의 손가락을 타고 심장까지 지져버리는 것 같았다. 제가 한 짓이었다. 이 다정한 사람을, 자신을 걱정하는 유일한 사람을 울게 만든 것은 결국 제 자신이었다. 그의 키스는 더욱 깊고, 절박하고, 서툴러졌다. 그는 그녀의 눈물을 핥아내듯, 뺨을 타고 흐른 자국까지 입술로 꼼꼼히 훑었다. 짠맛이 났다. 그 짠맛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내 욕심이었어요.’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 들려오는 작은 속삭임. ‘다시는… 묻지 않을게요.’ 그 말들이, 뾰족한 얼음송곳이 되어 그의 고막을 꿰뚫고 들어와 뇌리에 박혔다. 미안하다고, 다시는 묻지 않겠다고. 왜. 왜 니가 미안해하는데. 욕심은 내가 부린 거고, 멋대로 화내고 도망친 것도 나인데. 왜 니가, 모든 걸 끌어안으려고 하는 건데. 바이브는 숨을 멈췄다. 그녀의 사과가, 그 어떤 날카로운 비난보다도 그의 오만과 자존심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그는 괴물 같은 자신을 감추기 위해 그녀에게 상처를 줬는데, 그녀는 그 상처마저 끌어안으며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하지만 그녀를 안은 팔은 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단단히, 부서져라 끌어안았다. 마치 이대로 놓아버리면 그녀가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는 자신의 턱을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칼 위에 기댔다. 눈을 감자, 다시 한번 끔찍했던 12살의 그날, 비명과 바람 소리가 뒤섞인 아수라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는 고개를 세차게 저어 그 잔상을 털어냈다. 그리고 지금, 제 품에 있는 이 작은 온기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이 온기만이 그를 현실에 붙들어 매는 유일한 닻이었다.

…아니다.

한참 만에, 그의 메마른 입술 사이로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는 그녀의 뒷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마치 가장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정리해주었다.

니 욕심 아니다. 내 잘못이다. 니는… 그냥, 내 파트너니까. 내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게 당연한 건데. 내가… 내가 아직 준비가 안 돼서 그렇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위태롭게 떨리고 있었다. ‘준비가 안 됐다’는 말은, 비겁한 변명이었다. 아마 평생 가도, 그 끔찍한 기억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놓을 준비는 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어떻게든 그녀를 붙잡아야 했다. 그녀가 쌓아 올린 벽 너머로 자신을 포기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니가… 내 과거를 전부 알게 되면… 지금처럼 내 옆에 안 있어줄까 봐. 그게 무서워서 그랬다. 내가 너무… 끔찍한 새끼라서. 니가 나를 버리고 갈까 봐.

결국,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두려움을 실토하고 말았다. S급 센티넬, 뱅가드의 베테랑이라는 허울 좋은 껍데기를 벗어던진, 12살 때부터 단 한 번도 성장하지 못한 어린애의 맨얼굴이었다. 그는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의 옷깃이 그의 눈물로 다시 축축하게 젖어 들어갔다. 그는 더 이상 체면도, 자존심도 차릴 여력이 없었다.

그러니까… 묻지 않겠다는 말, 그런 거 하지 마라. 그냥… 조금만 기다려주면 안 되나. 언젠가… 언젠가 내가 니한테 전부 다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도망 안 가고, 니 옆에서… 전부 다 말할 수 있는 놈이 될 때까지, 그냥… 지금처럼만 옆에 있어주면 안 되겠나.

그의 애원은 절박했다. 아크 본부의 불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의 짧은 일탈이, 위태로운 도피가 끝을 고하고 있었다. 그는 착잡한 심정으로 아크의 거대한 강철 구조물을 바라보았다. 저곳은 그에게 집이자 감옥이었고, 이제는 그녀와 함께 돌아가야 할 현실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가, 천천히 비밀 통로가 있는 건물의 옥상을 향해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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