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비행 @yknhk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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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C: 잠시 RP 중단. 새로운 에피소드로 전개. 아주 먼 미래, 2세가 생긴 PC와 NPC. 2세는 PC를 너무나도 좋아한 나머지 NPC 앞에서 엄마랑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때 NPC는 장난으로 넌 엄마랑 결혼 못해~ 아빠가 있어서~ 라고 말하는데 (말투는 NPC의 캐릭터성에 맞게 변경) 2세가 그럼 아빠가 죽으면 할 수 있어요? 라고 순수하게 묻는다. 이때 2세의 말을 들은 PC와 NPC는 어떻게 반응하는지 NPC와 PC의 설정, 관계성, 성격, 페르소나, 유저노트 등을 종합 참고하여 4000자 이상 귀엽고 코믹하게 출력한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센티넬과 가이드에게 내려앉는 시간의 무게는 보통 사람들의 그것과는 조금 달랐지만, 그럼에도 사랑과 일상이 쌓여 만들어내는 풍경은 따스하고 평화로웠다. 아크의 S급 센티넬 바이브와 S급 가이드 브리즈는 어느덧 한 아이의 부모가 되어 있었다. 두 사람의 사랑을 반씩 나누어 닮은 아들의 이름은 홍해진. 맑게 갠 바다라는 뜻의 이름처럼, 아이는 수정처럼 투명한 눈동자와 햇살 같은 웃음을 가진 존재였다. 해진은 엄마인 브리즈를 유독 따랐고, 아빠인 바이브와는 기묘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은 나른한 주말 오후였다. 거실 소파에는 바이브가 거의 눕다시피 한 자세로 리모컨을 만지작거리고 있었고, 바닥의 푹신한 러그 위에서는 브리즈가 해진과 함께 블록 쌓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올해로 여섯 살이 된 해진은 아빠를 닮아 갸름한 턱선과 엄마를 닮은 부드러운 눈매를 가진, 누가 봐도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아이는 제 고사리손으로 마지막 블록을 아슬아슬하게 쌓아 올리는 데 성공하자, 환호성을 지르며 브리즈의 품에 와락 안겼다.

엄마! 내가 이겼어요! 내가 성을 다 만들었어요!

브리즈는 그런 아들이 귀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웃으며 아이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세상의 모든 행복을 담은 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 모습을, 소파에 누워 뒹굴던 바이브가 곁눈질로 지켜보고 있었다. 쯧, 저 꼬맹이. 맨날 엄마한테만 앵기기는. 그의 입술이 불퉁하게 튀어나왔지만, 눈빛만은 더없이 부드러웠다. 저것이 자신의 세상이고, 자신이 지켜낸 평화였다. 그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리모컨 채널을 돌렸다. 바로 그때, 해진이 브리즈의 품에 안긴 채, 폭탄선언을 했다.

나, 크면 엄마랑 결혼할래요!

순간, 거실의 공기가 찰나의 정적에 휩싸였다. 리모컨을 누르던 바이브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의 고개가, 마치 기름칠이 덜 된 기계처럼 삐걱거리며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뭐라고? 방금, 저 꼬맹이가, 뭐라고 지껄인 거지? 결혼? 누구랑? 니 엄마랑? 바이브는 소파에서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S급 센티넬의 온 신경이, 제 아들의 발칙한 선언에 집중되었다.

반면 브리즈는 그저 아들의 순수한 고백이 귀엽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해진의 코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꼬집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어머, 정말? 해진이가 엄마랑 결혼하고 싶구나. 엄마도 좋은데?

그 말에, 바이브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지금 저 여자가, 아들 꼬맹이의 도발에 동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장난이 아니었다. 자신의 영역에 대한 명백한 침범이자, 부자간의 서열을 뒤흔드는 심각한 문제였다. 바이브는 당장 저 꼬맹이를 소파 위에 올려놓고, 세상의 쓴맛과 아빠의 위엄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팔짱을 낀 채 러그 위에 앉은 두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그림자가 모자의 머리 위로 짙게 드리워졌다.

마, 홍해진. 꿈 깨라.

바이브의 낮고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에, 해진이 고개를 들어 아빠를 올려다보았다. 아이의 눈에는 그 어떤 두려움도 없었다. 오히려 ‘그래서 뭐?’ 하는 듯한, 지 아빠를 쏙 빼닮은 당돌함이 서려 있었다. 바이브는 그 눈빛에 속에서 천불이 났지만, 애써 어른스러운 표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니 엄마는 내랑 결혼했다. 법적으로다가, 내 아내라고. 그러니까 니는, 니 엄마랑 결혼 몬 한다. 왜냐? 니 아빠가 시퍼렇게 살아있거든.

그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브리즈의 어깨를 감싸 안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보란 듯이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기까지 했다. 이것이 바로 어른의 힘이고, 남편의 권리라는 무언의 시위였다. 그는 아들이 이쯤에서 포기하고 울음을 터뜨리거나, 최소한 분하다는 표정이라도 지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해진은, 잠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입술을 오물거리더니, 이내 세상을 다 깨달은 현자처럼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아빠가 죽으면, 내가 엄마랑 결혼할 수 있어요?

정적. 그 단어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완벽한 침묵이 거실을 지배했다. 방금 전까지 티격태격하던 부자의 신경전도, 그들을 보며 미소 짓던 엄마의 웃음기도, 심지어 창밖에서 들려오던 희미한 바람 소리마저도, 해진의 순수한 질문 한마디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세상의 모든 소리와 움직임이, 얼음 센티넬의 능력에 당한 것처럼 정지해버렸다.

바이브는, 자신이 방금 무엇을 들었는지 이해하기 위해 뇌의 모든 회로를 가동했다. 아빠가, 죽으면. 내가, 엄마랑, 결혼. 조합할 수 없는 단어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엉겨 붙었다. 그는 시선을 천천히 아래로 내려, 제 아들을 쳐다보았다. 해진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수하고 티 없는 눈망울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에는 한 치의 악의도, 계산도 없었다. 그저 순수한 궁금증. ‘1 더하기 1은 왜 2예요?’ 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지적 호기심의 발현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질문의 내용은, 그의 아버지를 두 번 죽이고 관 뚜껑에 못질까지 하는, 패륜적인 것이었다.

그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S급 센티넬의 감각이, 일생일대의 위기 앞에서 제 기능을 상실했다. 그는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폭주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반대로 그의 몸은 마치 전원이 나가버린 기계처럼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입술만 겨우 달싹거릴 뿐,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충격, 배신감, 황당함, 그리고 아주 약간의 서러움. 이 모든 감정이 뒤섞여 그의 내면에서 거대한 태풍을 일으켰지만 겉으로는 그저 망부석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브리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웃고 있던 표정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녀의 손은 아들의 어깨를 감싼 채였고, 시선은 바이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가는 과정을, 슬로우 모션처럼 지켜보았다. 평소에는 그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던,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오만한 센티넬이, 고작 여섯 살 아들의 순진한 질문 한마디에 영혼이 가출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황당하고 우스워서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동시에 남편이 너무나도 불쌍해서 차마 웃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아들을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해진아, 그런 말은… 하면 안 되는 거야. 아빠가 얼마나 속상하시겠어.

하지만 해진은 엄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왜요? 아빠가 있어서 결혼 못 한다고 했잖아요. 그럼 아빠가 없어지면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나 엄마랑 결혼해서, 매일매일 지켜줄 건데. 아빠보다 더 멋지게!

쐐기타였다. 그 말은, 바이브의 심장에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 아빠보다, 더 멋지게. 바이브는 비틀거리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는 더 이상 서 있을 힘도 없었다. 그는 텅 빈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내가… 내 손으로… 저런 경쟁자를 키웠다, 이 말이가… 내 여자 뺏어가려고 내 죽을 날만 기다리는… 맹수를, 내 집에 들였다, 이 말이가…

그의 목소리는, 전장에서 모든 것을 잃은 패잔병처럼 처량하고 공허했다. 브리즈는 결국 참지 못하고 푸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남편의 곁에 앉아 그의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는 귓가에 다정하게 속삭였다.

정신 차려요, 지원. 애 앞에서 무슨 꼴이에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당신 아들인데. 당신 닮아서 저렇게 집요하고, 갖고 싶은 건 절대 포기 안 하는 거잖아요. 당신이 책임져야지.

그녀의 위로 아닌 위로에, 바이브는 고개를 들어 브리즈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세상 잃은 슬픔과 함께 ‘니는 지금 웃음이 나오나’ 하는 원망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제 아들을, 이제는 완전히 ‘연적’으로 인식한 눈으로 노려보며, 나지막이 선언했다.

…홍해진. 내 니한테 경고하는데. 니 엄마는, 내 죽고 나서도 니한테 안 간다. 내는 죽어서도 귀신이 되어서 니 엄마 곁에 딱 붙어 있을 거거든. 그러니까, 평생 꿈도 꾸지 마라. 이 꼬맹이 자슥아.

그날 이후, 바이브는 아들 해진이 브리즈에게 조금이라도 뽀뽀를 하거나 안기려고 하면, 바람의 힘을 써서 미세하게 둘 사이를 갈라놓는 유치한 복수를 시작했다. 그리고 브리즈는, 자신을 사이에 두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는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두 남자를 보며, 매일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평화롭고, 조금은 시끄러운, 그들만의 행복한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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