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c: 이전 RP 종료. 새로운 에피소드를 시작한다. PC는 난데없이 오늘이 '고양이 허그데이' 즉, 고양이를 안아주는 날이라면서 NPC를 냅다 안아주었다. 'npc=내 사랑스러운 고양이' 인 것이다. NPC의 반응과 심리, 인물 간의 행동을 기존대화, NPC설정, PC설정, 로어북, 유저노트, 세계관 등을 적극참고하여 3000자 이상 상세하고 창의적이게 서술한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화로운 오후였다. 아이기스의 창밖으로는 인공 태양이 부드러운 빛을 쏟아내고 있었고, 숙소 안은 브리즈가 틀어놓은 나른한 음악과 공기청정기의 백색소음으로 가득했다. 바이브는 며칠간 이어진 고강도 임무의 피로를 풀기 위해, 거실 소파의 가장 편한 자리를 차지하고 길게 누워 있었다. 그의 손에는 뱅가드 2팀의 전술 분석 보고서가 들려 있었지만, 활자를 쫓는 눈은 이미 반쯤 감겨 있었다. 까만 속눈썹이 하얀 뺨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고, 고른 숨소리만이 그가 잠들기 직전의 상태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평온을 깬 것은, 갑자기 등 뒤에서 느껴진 인기척이었다. 바이브는 반사적으로 온몸의 감각을 날카롭게 세웠다. 공기의 미세한 흐름, 바닥을 스치는 발소리의 압력, 그리고… 익숙하다 못해 제 몸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브리즈의 파장. 그는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그녀가 주방에서 나오다 말고 소파 뒤에 멈춰 서서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무슨 꿍꿍이지. 그는 긴장을 풀고 다시 보고서로 시선을 돌리는 척하며 그녀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그녀가 조용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는 것은, 지난 몇 년간의 경험으로 터득한 생존 법칙이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브리즈는 한참 동안 그를 지켜보는 듯하더니, 이내 결심한 듯 소파 뒤편을 빙 돌아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대뜸 선포하듯 말했다.
오늘은 ‘고양이 허그데이’래요. 고양이를 안아줘야 하는 날.
바이브는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고양이 허그데이? 그런 기념일이 있었나. 아크에서 제정한 수많은 공식, 비공식 기념일들을 떠올려봤지만, 그중 어디에도 고양이와 관련된 날은 없었다. 아마 그녀가 인터넷에서 본 이상한 밈 같은 것이리라.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뭔 소리고 또. 그런 게 어딨는데.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브리즈는 그의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다는 듯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소파에 누워 무방비 상태로 있던 그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포옹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얼굴은 그녀의 가슴팍, 정확히는 부드러운 스웨터에 파묻혔고 익숙한 샌달우드 향이 훅 끼쳐왔다. 그는 순간 숨을 멈췄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어리둥절함에 버둥거리며 그녀를 밀어내려던 그의 귓가에, 그녀의 만족스럽고 다정한 목소리가 속삭임처럼 파고들었다.
내 사랑스러운 고양이, 이리 온.
고양이. 그 단어가 바이브의 뇌리에 박히는 순간, 그의 모든 동작이 우뚝 멈췄다. 뭐라고? 고양이? 내가? S급 센티넬, 바람의 지배자, 코드네임 바이브, 홍지원이, 저 여편네의 고양이라고? 그는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황당함을 넘어선 모욕감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자신을 향한 온갖 별명은 들어봤어도, ‘중2병’이라 놀리던 신드롬조차도, 그를 고양이 따위에 비유한 적은 없었다. 고양이라니. 차라리 늑대나, 하다못해 성질 더러운 맹금류라면 모를까. 작고, 귀엽고, 사람의 손길을 갈구하는 애완동물이라니. 이건 그의 자존심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었다.
그는 분노에 차 그녀를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의 몸에 단단히 팔을 두르고 등을 토닥이는 그녀의 손길은 너무나 익숙하고 평온했다. 게다가 ‘내 사랑스러운 고양이’라는 말과 함께 전해져 오는 그녀의 파장은, 조금의 놀림이나 악의도 없이 순도 100%의 애정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진심이었다. 이 여자는 지금 진심으로 나를 고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이 그를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야, 니 진짜 죽고 싶나. 손 안 떼나! 내가 와 니 고양이인데!
바이브는 씩씩거리며 외쳤지만, 그녀의 품에 안겨 있는 탓에 목소리는 웅얼거리는 소리로 뭉개져 버렸다. 브리즈는 그의 저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더 꽉 끌어안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성질 사나운 길고양이를 겨우 품에 안고 진정시키려는 집사처럼. 그 손길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바이브는 잠시 저항할 타이밍을 놓쳤다.
쉿, 착하죠. 지원 씨는 까칠한데, 사실은 애교도 많고, 예쁘고, 가끔 이렇게 먼저 와서 만져달라고 몸도 부비잖아요. 딱 고양이 맞네, 맞아.
뭐? 내가 언제 몸을 부볐는데! 그는 소리치고 싶었지만, 목구멍까지 차오른 항의는 그녀의 능숙한 손길 앞에 힘을 잃었다. 그녀는 정확히 그가 좋아하는 지점, 목덜미와 귀 뒤를 부드럽게 긁어주기 시작했다. 가이딩과는 다른 순수한 애정이 담긴 그 손길에, 그의 곤두섰던 신경이 저도 모르게 스르르 풀렸다. 젠장, 이건 반칙이다. 그는 자신의 몸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녀의 손길에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억울함에 입술을 깨물었지만 콧구멍으로 새어 나오는 ‘흥’ 하는 소리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브리즈는 그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쿡쿡 웃으며,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어머, 지금 골골송 부르는 거예요? 기분 좋아요, 우리 고양이?
아니다. 아니라고 말해야 했다. 당장 이 여자를 밀치고 소파에서 일어나 고양이가 아니라 S급 센티넬의 위엄을 보여줘야 했다. 하지만 그녀의 품은 너무나 따뜻했고, 그녀의 향기는 너무나 안정적이었으며, 그녀의 손길은 너무나… 기분 좋았다. 임무의 피로와 긴장으로 뭉쳐 있던 근육들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바이브는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처절하게 갈등했다. 그의 S급 센티넬로서의 자존심과, 그녀의 ‘고양이’가 되고 싶은 안락함 사이에서 그는 길을 잃었다.
결국 그는 저항을 포기했다. 아니, 포기하는 척을 했다. 그는 여전히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녀가 안아주는 대로, 쓰다듬어주는 대로 가만히 몸을 맡기고 있었다. 마치 ‘내가 좋아서 이러는 게 아니라, 니가 하도 귀찮게 구니까 어쩔 수 없이 참아주는 거다’라고 온몸으로 시위하는 길고양이처럼. 그는 눈을 감고 그녀가 만들어내는 작은 평화 속에 잠시 몸을 담갔다. 그래, 오늘 하루만이다. 오늘 단 하루만, 내가 니 고양이 해준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녀의 스웨터에 슬쩍, 아주 슬쩍 뺨을 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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